불기2557 년 9월 2째주 일요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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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3.12.18 조회31,126회 댓글0건본문
삼보에 귀의하오며
선선하여 참으로 수행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금강경 읽고, 마하반야바라밀 기도정진 열심히 하고 계시지요. 아니면
고요히 좌선을 하시는지요?
정화스님은 반야바라밀로 살아가는 길은 열린 마음,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나와 나의 것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나의 것을 채우는 것을
멈추고 그 마음을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마음을 쉬고 새롭게 마음
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나의 것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는 늘 불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쉰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생
각이 만족스럽든 못하든 간에 그냥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족스러운 것과 불만족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밝게 알 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지금까지 옳다 그러다는 생각을 쉬고 생각의 흐름을 그냥 지켜보는, 그리고 생
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고 알아차리는 것입니
다. 그래야만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따라가는 마음을 쉴 수 있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삶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지혜가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불광보살님, 지혜로 살아가시기를. 자비의 보살이 되시기를
마하반야바라밀
세속에 길이 있다
일지암 암주 법인스님
일지암은 초의스님께서 동다선을 쓰신 곳
오 부처님 나는 평화를 구현하는 자비의 보살이 되고자 발원합니다.
미움과 사랑이 본래 없고
다툼과 용서가 본래 없고
분열과 일치가 본래 없습니다.
의혹이 본래 없으니 심을 믿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할 일도 본래 없습니다.
오 부처님 나는 평화를 구현하는 자비의 보살이 되고자 발원합니다.
오류가 본래 없기에 진리가 본래 없고
절망이 본래 없기에 희망도 본래 없고
어둠이 본래 없기에 광명 또한 본래 없습니다.
그리하여 슬픔도 본래 없기에 심어야할 기쁨도 본래 없습니다.
오 부처님 나는 평화를 구현하는 자비의 보살이 되고자 발원합니다.
위로하는 자와 위로 받는 자가 본래 없고
이해받는 자와 이해하는 자가 본래 없고
사랑받는 자와 사랑하는 자가 본래 없나이다.
온전히 줄 자기가 본래 없기에
얻어야 할 영생도 본래 없나이다.
보살은 생사에 있으나 오염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열반에 있으나 적멸에도 취하지 않습니다.
보살은 비록 상(相, 관념)을 떠났지만 중생을 제도합니다.
비록 모든 법이 불생불멸임을 알지만 훌륭한 상호로 장엄합니다.
비록 모든 법이 텅 빈 모습임을 알지만 중생에게 응하는 것이 보살의 행입니
다.
비록 모든 불국토가 영원히 적멸한 것이 공과 같음을 관찰하나 가지가지 청정
한 불국토를 나타내는 것이 보살의 행입니다.
비록 불도를 얻어서 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들어가나 보살도를 버리지 않는 것
이 보살의 행 입니다.
미움과 사랑이 본래 없지만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워하는 자도 사랑하는 자도 없는,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
들겠습니다.
분열과 일치가 본래 없지만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심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분열과 일치라는 말도 없는,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만들겠습
니다.
위로 받는 자와 위로하는 자가 본래 없지만 아픈 사람에게 위로의 손을 내밀겠
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로 받는 자와 위로 하는 사람도 없는, 늘 자비와 헌신이 넘
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 글은 성프란시스코의 기도문의 내용을 인용하여 반야심경의 내용으로 재
구성한 글입니다. 성프란시스코의 기도문은 알기 쉽고, 우리시대의 일상언어로
쓰여 있으며, 문장이 아름다워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의 법문도 현시대의 언
어로 표현하고, 쉽고 감동적인 일상의 언어로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수도자에게 불교와 유사한 신비주의 방식인 내면의 수행법
이 있습니다.
성프란시스코와 바르스트 데카르트 등으로 대표되는데 기도문에
“나는 기도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이 기도문는 인간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의 신행도 우리와 같은 청정과 경건을 강조합니다.
부처님은 누가 봐도 옳은 것은 진리이며, 옳은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불교와 함께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불교경전의 속과
밖을 넘나들어 진리를 자유롭게 해석해야 하며, 시대에 매이지 않고 종교
에도 매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세속에 길이 있다.
세상의 진리는 어렵지 않으며 실천하기도 어렵지 않다. 인간관계속에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일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내 마음 다스리는 것은 쉽다. 방
해하는 타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선사는 코를 한번 만지는 것처럼 쉽다고 한 것이다.
다툼을 통해 마음이 갈라지고 분열이 생기며, 다툼은 믿을수 없다는 등의 생
각이 삶을 지배하면 그 자체가 고통이 된다.
화 미움 다툼 분열을 고통이라 하며, 탐진치 삼독 즉 탐욕 화 어리석은 생각으
로 판단하여 미워하게 된다. 욕심이 화 미움 폭력으로 나아간다.
미움 다툼 의심 화는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만남을 통해 마주하고
부딪쳐서 생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 있지 아
니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이 있어 반전의 마음이 생기고, 다툼과 전쟁이 있으면 평화를 원하게 된
다. 말하자면 평화, 사랑이라는 단어도 현상태에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마음
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반야심경의 본래 없다는 말도, 우리 눈에는 화 미움 다툼이 있는데 이
있음은 우리 마음에서 만들어진 뜬구름 같은 것이여서, 본래 없음이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 마음을 수행으로 없애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 방법으로, 화나는 일이 있을 때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며 초
기 단계에서 진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은 사실확인도 하지 않
고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한 생각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다.
유교의 중용에서 중(中)은 다투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일이 발생하기 전인 즉
희, 노, 애, 락과 인,의,예,지 등 4단 7정의 감성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이며, 용
(庸)은 이런 4단 7정들의 작용으로, 이런 감정에 걸리지 않게 작용을 하는 것이
라고 합니다.
행복을 일상속에서 찾아라
꽃 한송이를 사들고 집으로 간다든가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의 메세지를 보내
거나 그 일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이 좋은 감정이 생기고, 놀라워하고, 기뻐할
때 행복의 요소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작은 기쁨 웃을 일이 많이 생각해야 한다. 행복하자라고 생각하면 너무 추
상적이고, 웃을 일이 많이 만들자고 생각하면 실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
은 작은 일 웃는 일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이 사준 호떡, 감사의 메
시지에서 웃고 행복해진다.
공양을 올릴때에도, 음식과 꽃에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는 것이 중요
하다. 그것은 상대에게 내 마음을 순수하게 담아 손을 건네는 데서 것이다.
깊이 보고 새롭게 보고 감탄하는 감성을 지니는 것이다.
21세기는 여성 감성 모성의 시대이다. 감수성을 발달시킴으로 자기 긍정과 행
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야의 지혜는 비어있음에 대한 철저한 사유와 빛나는
감성의 상태이며 바라밀은 그러한 지혜로 행하는 모든 일이다.
감수성 훈련이 삶의 수행이며, 이 수행의 결과는 표현으로 드러난다.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 관심이 세밀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가 넘어진 간판을 세우는 것을 보더라도 관심이 없으면
아무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애가 이렇게 이웃에 대
한 배려를 하다니 대단하다는 마음이 생길때 감동이 일어나고 행복감을 느끼
게 되는데, 우리는 무관심으로 이러한 상태가 주는 행복이라는 보물을 순간 놓
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수행자은 이러한 사랑과 감동
행복의 순간을 느끼며 살아가는 자이다.
맹자(孟子)에 아이가 우물에 빠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를 구하게 되는
데 이는 인간은 본래 애닯아 하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한다.
이렇게 하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다. 잘 듣고 생각하고 살아라. 그리하여 잘 판
단해서 표현해야 한다.
불교수행법은 문, 사, 수이다. 듣고 깊이 생각하고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
로 생각하는 것은 수행이다.
친구아이가 착한 일을 하면 아들 잘 키웠다, 감동받았다고 전화하고 표현해라.
수행은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표현할 때 질투와 짜증이 줄어든다.
세속에 길이 있다 행복, 구원, 열반, 해탈은 작은 일들 속에 있다. 관심이 있고,
깊이있게 사유하고, 사심없이 공정하게 생각하고 이를 표현함으로 하자
불자 모두가 철학자가 되자.
우리의 삶은 외부적 조건을 갖추면서 풍부해진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자가 많
으나 실로는 매순간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생각함으로써 삶이 풍
부해 진다.
비트겐스타인은 “생각은 의지다.”고 했다. 이 말은 생각은 내가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인데, 깊은 성찰과 관찰이 일어나면 이를 표현하고 행함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과거는 탐욕과 질투를 없애는 데 있다면 21세기는 긍정적 요구를 늘이는 것
이다. 칭찬하고 좋아하면 편견이 깨지고 재미있고 행복한 삶이 된다. 작은 일에
서 행복을 찾자. 그것을 표현함으로서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방법
이다.
금주의 다짐
우리들은 각자가 독립한 사람으로서 자유스럽게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우
리는 생각하고 말하는 것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생각으로
어둠을 주고 기쁜 생각으로 세상에 밝음을 뿌리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의 물결
로써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밝은 생각 밝은 말이 이웃과 세계를 밝게 빛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