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7년 9월 호법법회 봉행 > 불광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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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7년 9월 호법법회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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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3.09.10 조회31,121회 댓글0건

본문

♦불기 2557년 9월 호법법회가 열렸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높고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꿈과 희망과 감사를 느끼게 하는 좋은 계절입니다. 지난 무더위와 장마가 있었기에 오늘 청명한 가을이 더욱 감사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좋은 계절도 며칠 지나면 그저 그러려니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또 매서운 칼바람의 겨울이 우리를 일깨워 주리라 생각합니다. 번뇌 즉 보리이듯이 어려움이 없으면 어찌 감사함을 알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순간순간 감사 아님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 법문>

 오늘도 호법발원하시고 자리를 함께하신 형제 여러분 감사합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감사합니다로 법을 열어 주십니다.

 요즘 대한민국이 이석기라는 사람 때문에 굉장히 소란스러운데 인왕호법발원경(인왕반야경)에 나라가 어지럽고 천재지변이 나고, 외침을 받아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할 때 반야바라밀법이 최상의 법이며, 이 국토를 구한다. 이 국토의 청정과 평화와 안녕을 구하기 위해 반야바라밀을 선양하고 생각하고 염송하라. 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에서 내 생명이란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입니다. 반야바라밀이 바로 나의 생명입니다.  나의 생명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생명이라는 것이고, 그 부처님의 생명이라는 것은, 일체 삼라만상 모든 생명과 더불어서 같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경에 보면 부처님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 몸 금강신이다. 음식을 먹어서 지탱되는 몸이 아닌 비잡입생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그렇게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호법의 인연 때문이다. 법을 잘 보호해서 그런 어른이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자주 부처님을 나와 상관없는 제 3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부처님법이 바로 나의 생명이다. 이게 호법이다.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법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보호하는 것은 내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호법발원문에 “부처님 법을 널리 편다”는 것은, 내가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이 부처님의 영원한 생명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법이란 것이 큰 공덕을 이룩한다는 것이고, 이 사회를 빛내고 이 국토를 불국토로 만든다 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혼란스럽고, 내가 혼란스러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열심히 염송하고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부처님의 공덕생명을 꽉 붙잡아 매어야합니다. 어떤 외부에 혼란이 벌어져도 그것에 따라가지 않고, 그래서 인왕경에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극복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렇게 호법 발원한 것은 내 자신이 성장하고, 이 국토가 평화로워지고, 모두가 행복된 삶을 사는 근본이 그것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호법자체가 내 생명을 키우는 것이다.

 

  ♦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

     마음에 그림

  1] 어리석은 두 사람이 상자와 지팡이와 구두를 가운데 두고 종일 다투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이것을 본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왜들 그렇게 다투는가? 그 물건이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싸우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말했다. “이 상자에서는 음식이든, 의복이든, 보물이든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나올 수 있고, 이 지팡이를 잡으면 적군을 항복받고, 이 구두를 신으면 하늘을 날 수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말하였다. “다툴 것이 없어요. 내가 똑같이 나누어 드리지요. 두 분이 다 조금 물러서시오.” 어리석은 두 사람이 물러서자 젊은이는 한 손에는 상자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발에 구두를 신고는 공중에 솟아오르며 말하였다. “ 자 이렇게 되면 다툴 것이 없지 않겠소.” 하면서 멀리 날아갔다.

  여기 두 사람은 외도를 믿는 사람이고 상자는 보시다. 저들은 보시에서 온갖 보물을 낳는 것을 모른다. 또 지팡이는 선정이다. 저들은 선정으로써 번뇌의 악마를 항복받을 줄을 모른다. 또 구두란 청정한 계행이다. 저들은 계율에 의하여 온갖 다툼을 뛰어 넘는 것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상자와 지팡이와 구두를 사이에 두고 다투고만 있는 것이다.<잡보장경>

 보시라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 보시다.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시라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문을 여는 것이다. 문을 활짝 여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재보시 - 재물을 이유 없이 주는 것이다.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창피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을 재보시라 한다.

 둘째 법보시 - 법보시가 최상의 보시라 말할 수 있다. 법보시란 부처님 말씀, 진리를 전해주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사는 용기를 갖게 하고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일체 유심조 -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다. 내 마음에서 어두운 생각을 지으면 나에게 병고와 가난과 궁핍이 오고, 내 마음이 밝음을 생각하면 밝음이 온다는 것이 일체유심조의 도리다.

너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을 본래부터 타고 났다. 부처님의 공덕이 너한테 넘쳐나고 있다. 본래 자신이 당당하고 풍족하게 살 사람임을 알게 하면 그 사람의 삶은 풍족해진다. 법을 알아야만 법보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회에 오게 하고 호법발원을 하게하고 항상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게 하면 그것이 얼마나 큰 법보시 인가? 이것을 행해야 진실된 불자다.

 세번째 무외시다. 두려움을 없게 해준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사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가난과 부자를 막론하고 다 두려움이 있다. 죽음이 있는 무상살기다.  그런데 이러한 무상살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불교를 믿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감로법이라 한다.

 감로법은 첫째 불사의 법 죽지 않는 법이며, 둘째 진리의 법 진리의 말씀, 진리 그 자체다. 모든 사람이 죽는데 왜 죽음이 없다고 할까? 의문을 제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수행은 결국은 죽음이 없는 것을 추구합니다.

인격을 도야하고, 평화롭고 서로 상부상조해서 살아가는 것도 불교에 있고, 병을 낫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그 법도 있고, 그러나 끝내는 생사 없는 법, 반야심경에 불생불멸의 생명이다. 결코 태어난 적도 없고, 따라서 죽는 법도 없는 그것이 감로법이다.

한량없는 공덕을 지닌 그 생명이 나의 생명이며, 부처님의 법신생명은 죽지 않아, 이 도리를 알았을 때, 죽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상살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죽지않는 도리를 아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구원이 없다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구원이다. 내가 신이고, 부처님이고,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다. 이것이 최상의 구원이다.

 요즈음 종교계에서 본래 죽음이 없는 그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종교다. 이렇게 바뀌고 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나오는 선정이라는 지팡이입니다. 선정이 모든 번뇌 망상을 항복받는 겁니다. 사실 우리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 번뇌 망상이다. 우리들은 원래 행복하게 살 권리를 타고 났어. 그것을 모르고 삶에 번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 낙원을 만들었지만, 그기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말에 속은 것이다. 내가 본래 부처님 공덕생명인데, 내 삶의 공덕을 다 갉아먹는 것이 번뇌 망상이다.

 선정이란 번뇌 망상을 조복 받는 지팡이다. 지팡이를 가지는 것이 바로 선정이고 선정력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서 망상에서 벗어나서 선정 속에 들어가자.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은 모든 망상을 쓸어버린다. 모든 망상을 재우고 선정력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혜가 나온다. 선정이 목표가 아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해서 선정에 들 때, 본래 그 자리에 들 때 지혜가 나온다. 그 지혜가 밝은 빛이다.

삶 자체가 즐거워진다. 내 삶이 기쁘지는 것이다. 돈이 생기고 안 생기고 상관없이, 아프고 안 아프고 상관없이 하루하루가 기쁘지는 것이다.

그래서 운문스님께서 일일시호일이라 했으며, 선정 속에서 내가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라는 은혜를 받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처처에서 우리들은 은혜 속에서 살고 있다. 구름 바람 꽃 이 모든 것이 한량없는 공덕이다. 참 감사하다. 그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데, 그 감사가 법당의 메아리에 나오는 <감사와 신념>이다.

  

   * 법당의 메아리 합송 *

       감사와 신념

 [1] 눈을 뜨고 보면 온 천지가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다. 무수한 가르침과 은혜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공기도 물도 햇빛도 의복도... 온 천지 만물이 자비하신 은혜의 표현이다. 감사하고 받는 마음이 모두를 맑히고 은혜를 더욱 크게 한다. 감사를 모르는 마음에는 은혜가 어두어지고 충분한 공덕을 누리지 못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자. 좋은 날. 기쁜 날 오늘은 축복받은 날이라고 반복 생각하자.

이렇게 반복할 때 하루하루는 새로워지고, 깊은 마음에 이루어진 대로 환경조건은 이루어져 간다. 진리를 순응하는 말과 생각은 자석 같은 힘으로 조화로운 조건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원만한 성격, 원만한 인격, 행복한 운명은 다가온다. 매일 체조하면 근육이 발달하듯이 기도하는 것은 영혼을 맑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발달시킨다.

 [2] 인생에 있어 감사는 삶의 보람을 더해주고 진실생명을 성장시킨다. 완전하고 원만한 무한생명공덕이 삶을 뒷받침하고 앞길을 밝게 비추며 성공의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감사임을 잊지 말자. 고난을 만났을 때 고난을 극복할 최초 . 최상의 방법은 감사이다. 감사는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고 거친 물결을 잠재우며 큰 힘과 용기를 부어준다.

감사는 나쁘게 보이는 현상 속에서 좋은 길, 좋은 상황, 좋은 사람을 발견하게 한다. 감사에서 좋은 일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희망과 평화로 바꾸며, 그 마음이 평화로울 때 환경은 평화로이 바뀌는 것이다. 감사는 모든 사람에게서 선을 발견하고 모든 환경에서 평화를 발견하며, 모든 상황에서 조화와 성공을 발견하게 한다. 감사는 진리생명이 성장하고 진리환경이 열리는 최상의 음악이다.

  [3] 모든 사람은 겉모습 여하에 상관없이 내면에 지극히 착하고, 지극히 위대한 덕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곧 무엇으로 비유할 데 없는 최상의 가치이며 진실이다. 그것은 만인의 생명에 깃들어 있는 영원히 저물지 않는 태양이다. 이 영원히 저물지 않는 태양에 등을 돌리거나 가리지 않는 한 이 광명의 주인인 인간은 행복한 것이다. 이 광명에 대하여 눈을 감거나 유혹에 빠져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때, 빛은 있어도 인생은 어둡게 된다.

만약 우리 인생에 어려운 문제가 일어났다면 눈길을 어두운 곳으로 돌린 결과임을 깨닫고 마음을 돌려 부처님의 자비 광명을 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 부처님은 무한의 지혜, 나의 생명에 깃들어 나의 인생을 빛내주신다. 부처님은 무한의 자비, 나의 생명에 깃들어 나의 인생을 원만하게 키우신다. 부처님은 무한의 위력, 나의 생명에 깃들어 일체를 성취시키신다.  감사하여라.’

 이렇게 우리들의 삶이 감사로 틈이 없을 때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감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무쪼록 마음속에 은혜를 알고 부처님 감사함을 알고 우리들의 삶이 보다 행복해지고 즐겁고 신나는 그런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바라면서 형제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신축 불광법당의 전경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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