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사는 창건당시부터 구도철야정진을 시작해, 지난 19일 444회차를 맞았다.

불광사 창건 초부터 시작

444회차 구도철야정진 회향

창건주인 광덕스님 주창한

불교의식 대중화.생활화 따라

한글 <천수경> <금강경> 독경

‘마하반야바라밀’ 일심 염송

 

   
불광사 구도철야정진에는 재가자들이 집전을 맡는다.


철야정진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10년 전 성도절 철야기도에 동참한 이후로 밤새워 기도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님을 마음 깊이 각인해둔 탓이다. 잠 자는 것 하나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데, 과연 신새벽에 말짱한 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도전하는 심정으로 지난 19일 오후9시 서울 불광사를 찾았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구도철야정진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신축법당 준공 이후 교육원 보광당에서 진행된 마지막 철야정진이 진행된 이날 40 여명이 함께 했다.

 

불광사 구도철야정진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19일 기도가 444차로, 불광사 창건주인 광덕스님 때부터 이어온 대표 수행프로그램이다. 1년에 열두 번으로 계산하면 정확하게 37년 동안 기도를 해온 셈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꾸준히 이어오는 데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새삼스럽지만, 구도철야정진을 이어온 스님과 신도들을 다시 보게 됐다. 한 번도 힘든데 오랜 시간을 이어온 신심과 원력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구도철야정진은 잠실에 불광사를 세운 뒤 법당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자는 취지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구도정진을 하면서 신행상담을 함께 했다고 한다. 광덕스님이 직접 신도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며 생활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스님이 불자들에게 해 준 신행상담의 내용들은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현재는 상담 대신 스님의 짧은 법문과 함께 기도정진위주로 진행된다.

철야정진은 오후9시에 입재해 새벽예불까지 마친 뒤 오전4시가 돼야 회향한다. <천수경> 독송으로 시작해 예불 <금강경> 독송, <반야심경> 사경. ‘마하반야바라밀’ 염송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자정이 넘은 후부터 새벽예불 전까지 3시간가량은 목탁소리에 맞춰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

오후9시가 되자 <천수경> 독송이 시작됐다. 불광사 기도의 특징 중 하나는 재가자가 집전을 하며 기도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증명법사처럼 함께 하고, 실질적인 운영은 재가자가 맡는다. 이날도 정진부장이 <천수경> 독송 때 집전을, 2인1조의 정진부원들은 <금강경> 독송과 바라밀 염송 때 집전을 맡았다. 또 하나는 한글경전을 독송하는 것이다. 불광사는 한문경전 대신 <우리말 법회요전>을 사용한다. 1983년 광덕스님이 불교의식의 대중화 생활화 차원에서 한문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한글로 된 <천수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송해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종단 의례위원회가 마련한 <한글천수경>이 중앙종회 동의만을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라 <한글천수경>은 아직까지 생소하다. 신도들은 익숙하게 광덕스님이 번역한 한글천수경을 읽기 시작했다. ‘개경게’에 이어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 백천만겁인들 어찌 만나리/ 내 이제 보고 듣고 받아 지니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라고 독송했다. 입으로는 한글경전을 읽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가 떠올랐다. 그 순간엔 오히려 한글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천수경>이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대들은 한문보다는 영어를 더 친숙하게 여긴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한문 앞에선 한 없이 작아진다. 띄엄띄엄 한 글자 씩 겨우 읽는 처지에 뜻을 이해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진언을 제외한 나머지 구절들이 모두 한글로 돼 있으니 이해가 쉽다.

   
반야심경 사경을 하는 불자들의 모습.

<금강경> 독송시간이 되자 이번엔 4명의 정진부 재가자들이 목탁과 마이크를 잡고 빠르게 한글금강경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읽고 있지만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합해져 나에게 <금강경>을 읽어준다는 착각이 들었다. 40여분이 흘렀을까. 어느새 금강경 1독을 끝냈다.

10분 휴식 뒤 이번엔 <반야심경> 사경이다. 준비된 사경지는 한글본과 한문본 두 종류였다. 주저 없이 한글본을 골라 자리로 왔다. 한문을 선택한 이도 간혹 눈에 띄었다. 지도법사 본공스님은 “한권의 경전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정성들여 한자 한자 쓸 것”을 당부했다. 경전 이름은 1자1배로, 나머지는 3자1배로 사경을 했다. 270자의 반야심경을 다 쓰려면 100배는 해야 했다. 108배를 하는 마음으로 사경을 시작했다. 한번 절하고 앉아 한 글자씩 써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완성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경 시작이다. 일어나 절을 한 번 하고 ‘관자재’ 세 글자를 적었다. 다시 일어나서 절을 하고 ‘보살행’을 적었다.

절을 하다 보니 춥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처음엔 외투를 벗는 게 전부였지만, 어느새 숨도 가빠졌다. 문득 얼마나 남았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다. 평소 같으면 108배를 끝냈을 시간인데 아직 3분의1밖에 쓰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눈으로는 절을 몇 번 더 해야 하는지 세어보고 있었다. 글씨도 점점 삐뚤빼뚤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숨도 돌릴 겸 주위를 둘러봤다.

맨 앞에서는 학인 스님들이 정갈한 모습으로 사경을 하고 있었다. 딸의 사진을 곁에 두고 한문반야심경을 열심히 사경하고 있는 한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기도동참자 가운데는 가장 어려보이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불자들과 부부가 함께 온 불자, 불광사 불교대학 도반들 모두 굵은 땀을 흘려가며 한 글자씩 채워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경을 끝냈다. 딸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는 휴식시간에도 쉬지 않고 사경을 마무리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휴식시간이 됐다. 30분가량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기도한다고 한다. 자정엔 죽공양 시간이다. 철야정진이 시작할 무렵부터 자원봉사자들은 죽공양을 준비한다. 안내에 따라 6층 공양간으로 올라갔다. 막 쑨 따끈한 호박죽과 김치가 가지런히 차려 있다. 먹음직스런 호박죽을 보니 시장기가 느껴졌다. 서둘러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었다. 공양간에 올라올 때는 혼자여서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을 먹는 순간 사라졌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다시 법당으로 내려와 앉았다. 몇몇 동참자들은 벽에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2시30분이 되자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이 시작됐다. 정근이 시작되자 누군가는 일어나 절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빠른 목탁소리에 맞춰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했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메아리처럼 법당 안에 가득 찼다. 기자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합장한 자세로 바라밀 염송을 했다. 입으로 외는 ‘마하반야바밀’과 귀로 들어오는 ‘마하반야바밀’에 어느 순간 아득함이 느껴졌다. 광덕스님은 불광 불자들에게 생각마다 걸음마다 항상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강조했다. “일체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로 일체 공포를 타파하고 자유를 성취하며 열반을 증득하고 성불”했다며 “소원이 성취되는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환희심과, 감사한 마음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 염송”하라고 가르쳤다. 불광사가 12시30부터 세 시간을 바라밀 염송에 할애하는 이유는 광덕스님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1시를 가리켰다. 곳곳에서 수마와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목탁소과 정근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잠을 청하는 이들 중에는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턱이 아프다고 생각하면서도 바라밀 염송을 멈추지 않은 것은 잠을 이겨보겠다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세 시간의 정진 후 새벽예불을 마친 뒤에야 철야정진은 끝났다.

기도를 오기 전에는 생각이 복잡했다. 처음엔 어느 사찰의 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하나를 고민했고, 그 다음엔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끝나고 나서는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하나를 걱정했다. 다행인 것은 기도하는 순간에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독경을 할 때는 독경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사경이나 정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할라치면 여지없이 실수가 따랐다. 아차 싶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기도를 했다. 집중하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맑아졌다고 느꼈다. 부처님께서는 <불반니원경>에서 “옷에 때가 묻으면 잿물로 몇 번이고 빨아 더러운 옷을 깨끗이 하는 것처럼 마음에 번뇌 망상의 때가 낄 때에는 나의 가르침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오랜 만에 찾아간 구도철야정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10년간 묶었던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계기가 된 셈이다.

[불교신문2957호/2013년10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