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7년 10월 호법법회 봉행 > 불광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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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7년 10월 호법법회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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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3.10.03 조회31,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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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본관 신축 불사로 인해 교육원에서 갖기 시작한 법회가 2013년 10월 첫째 주 수요일의 호법법회로 마무리를 하게 되어 불광 불자 모두는 감회가 남다른 마지막 법회를 가졌습니다. 3층과 4층으로 나뉘어 법회를 보고, 3층에서는 화면으로 법사님의 법문을 듣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아주 훌륭한 본관에 곧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에 모두 환희롭고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현성 보살님의 사회와 본공스님의 집전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천수경과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하며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임을 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의 호법법회도 불광사의 선덕이신 혜담스님께서 <현상 저 너머를 보자>는 제목으로 법문하셨습니다. 호법발원법회에 동참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인사말로 시작하시며 불광법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호법법회의 호법이 무엇인가 하면 호법발원에 표현된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여기에서 감로법이란 불사(不死), 즉 죽지 않는 법으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알아서 진정으로 잘 사는 법을 말합니다.

~법문중인 선덕 혜담스님입니다~이제 새법당에서 뵙겠습니다~

 법문요약

어느 대학교수는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운데 종교까지 어려워서 되겠느냐며 신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독교가 쉬워서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 자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고 어려우므로 불교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던 남녀가 파산에 이르고 돈을 얻기 위해 형제와 부모를 죽이는 것을 보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법문하겠습니다.

 다른 종교의 신은 제3자로서 인간을 만드는 이원론이지만 불광에서는 부처님과 나는 같이 있는 것으로 일원론입니다. 반야바라밀인 진리의 모습이 삼라만상인 우리의 모습으로 처처에 현현,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나는 같은 존재입니다. 부처님은 한량없는 공덕이 있어서 모든 지혜를 갖추시고 불생불멸입니다. 

이런 부처님과 우리가 통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임을 알면서도 우리의 삶이 어렵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미혹의 문으로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로를 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여 내 생명이 부처님 생명과 같다는 것을 끊임없이 관하는 것으로 이것이 기도 성취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불교 수행에는 지와 관이 있는데 남방의 위빠사나는 관법이고 우리의 참선, 간화선은 지와 관을 함께 합니다. 지는 놓아버리는 것, 비우는 것으로 위빠사나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생명은 모양이 없지만 끊임없이 작용하는데 상처가 저절로 낫는 것과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인류 최초로 보신 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 생명은 죽지 않는 것으로 내 생명이 부처님의 본래 생명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지켜보는 방법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겁니다. 입으로 염송하면서 마음으로는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임을 끝없이 지켜보면 무념, 일심이 되고 저절로 진리의 당체와 하나가 됩니다. 그때가 반야바라밀을 내어 쓰는 시간으로 우리의 삶은 힘든 고통이 없어지고 죽음을 초월하는 감로법이 됩니다. 이 감로법을 전하는 것이 호법발원입니다. 

<원각경>에 보면 무명생각의 그림자를 나의 마음이라 하고 육신, 고깃덩이를 나라고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무명이 미혹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다른데 생각은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쉬어야 하는데 생각을 놓는 것이 지(止)입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지켜보면서 한 편으로는 모든 생각, 감정, 집착, 번뇌, 망상은 놓아버려야 합니다. 모든 관념을 놓아버린 상태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마하반야바라밀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진짜 마음이고 실상입니다. 근본적인 마음이 있을 때 모든 것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일체유심조라 합니다. 밝은 마음이 나타나면 육신에 병이 없게 됩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국토인 몸에 병이 생기는데 이것은 약으로 나을 수 없습니다. 

진리에서 보면 우리의 육신은 업보 덩어리가 아니라 부처님, 진리를 실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 세계를 부처님 국토로 만들려면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육신이 있어야 하므로 이것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몸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고 함부로 대하거나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주신 사명은 우리가 태어날 때 갖고 나온 사명이고,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내 본성 자리에 돌아가는 것이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행복해진다는 것내 삶이 힘 있어지고, 지혜로워지고, 용기가 생기는 것이고, 기쁨이 오는 겁니다. 이것이 원래 우리가 태어난 사명입니다.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어리석음입니다. 삶 자체가 기뻐져야 합니다.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도 삶 자체를 기뻐할 수 있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삶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리로 성장해서 언제나 행복하게 잘 사는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입니다.

~새법당 대중공양간.. 쾌적하고 밝고 깨끗한~

 법회보 <현상 저 너머를 보자>

1)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의 완전한 실현이시며, 법성이시며, 진여이시며, 무상의 진리이시다. 끝없는 선 공덕이 원만하시고 한없는 지혜가 넘쳐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부처님을 염하며 조석으로 원만한 부처님을 공덕을 관한다는 것은 진리세계의 무한성과 원만성을 자신에게 실현시키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비유로 말하면 진리의 완전성이 자기 마음에 통하는 통로를 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부처님의 원만공덕성을 관하고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진리세계의 완전성을 현상화하는데 필요한 지혜와 힘이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진리세계는 무한이므로 우리가 무한한 공덕세계에 통로를 개설하였을 때 무한세계로부터 항상 새로운 공덕이 용솟음쳐 오는 것이다.

 2) 인간은 무지와 죄악의 결정인 듯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야 지혜에 의하면 인간은 불성의 완전한 구현자이다. 자신 속에 무한의 기회와 공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범부로 자처하며 육신을 자신으로 삼는다. 그리고 생각의 움직임을 마음이라 하나니 이것이 미혹이다. 이 미혹이 무한공덕세계인 부처님과의 통로를 가로막는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미혹을 버린다면 언제나 부처님의 지혜에 인도되고 자비하신 위신력의 가호를 받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부처님께서 진리를 실현하시는 데 있어 중요한 존재다. 우리 스스로가 그릇된 집착만 버린다면 부처님의 완전하신 위신력은 우리 생명력에 솟아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부처님에게서 받은 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항상 바라밀을 관하고 부처님과의 통로를 활짝 열자. 

3)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데 있어 신변에 일어나는 일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현상에 일어난 불쾌한 일에 사로잡히지 말고 눈을 들어 현상 저 너머를 보자. 모든 사람의 본성의 완전을 보자. 모든 사람은 불자로서 모두가 진실하다. 악인은 없다. 모든 이웃은 불자이며 형제이다.

서로 돕고 힘을 합하여 충돌 없이 향상할 서로인 것이다. 악을 보지 말고 선을 보자. 미움을 보지 말고 자비를 보자. 어리석음을 보지 말고 지혜로운 존재를 보자. 이렇게 노력할 때 우리 주변에는 오직 선하고 조화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만이 실현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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