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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 11월 호법법회와 수능 100일기도 회향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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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3.11.09 조회31,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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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 11월 호법법회와 수능 100일기도 회향법회를 봉행했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래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오늘은 호법법회와 수능회향일이 겹쳐서 수험생 부모님들의 간절한 염원이 함께해서 더욱 지극하고 신심 가득한 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초목들은 저마다 이 가을을 더욱 멋지게 참되게 자기 본분을 다하느라 온힘을 다해서 밝고 아름답고 환희로움으로 우리들을 일깨워줍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이 희망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가난한 이는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고, 부자는 자기가 가진 것이 모두의 것임을 알아서 열심히 보시하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진리를 영원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법문요약>

오늘 불광사 보광당에서 자리를 함께 해주신 형제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2014학년도 대학 시험을 앞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회향을 맞이하시는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이 함께해서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난 소기의 이유를 나름대로 다 이루어가는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인왕반야경에 나라가 어지러울 때, 천재지변이 있고, 외침이 있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는 반야바라밀 이 부처님 법을 선양하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반야바라밀을 선설하고 염송하고 생각하고, 반야바라밀 사상대로 살 때, 모든 힘든 일이 다 해결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왜 반야바라밀이 모든 것을 다 잠재울 수 있는 그런 신비로운 법인가? 그 이유는 반야바라밀은 일체가 동일생명, 같은 생명입니다. 이 산천 삼라만상과, 사람과 사람사이와, 전부가 같은 생명, 동일생명이라는 것에 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차치하고, 모든 어려움을 전부 없앤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대립 갈등 분란은 내가 잘났다. 내가 속한 집단이 잘났다. 우리 나라가 너희나라보다 잘났다는 것이 기본이 되어 다투고 투쟁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전쟁이 모든 인류문화을 괴멸시킨다는 것을 한국전쟁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것은 너와 내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극복하고, 이 우주와 내가 같은 생명이고, 너와 내가 같은 생명이다 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정사에서도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내가 가장 잘 한다는 옹고집 때문에 벌어나는 일이 많다. 혹 부모로써 자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내 뜻대로 자식의 의견을 전혀 고려치 않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각자 가치관이 다르므로 나의 고집을 버리고 일체가 동일생명이라는 그곳에서 무언인가 다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반야바라밀이란 입장에 서서 이 세상을 돌아봤을 때 모든 것이 동일생명이라는 것에 부처님의 법이 있음을 알게 깨닫게 됩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하나 생각나는 것은 말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말이란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큰 것입니다.

말은 모든 공덕을 만들어 내는 근본이며 모든 창조가 여기서 나옵니다. 말이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듣고 아는 것처럼 일체유심조라고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들의 내부에서 표출될 때 행동으로, 표정으로, 이런 여러 가지 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 되는 것이 말입니다. 사실 내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뜻하고 친절한 고운 말을 쓰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희망 섞인 말을 쓰면, 그 사람의 삶이 따뜻하고 남을 격려하고 희망적이고 그런 것으로 전개될 것이고, 모든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저주를 말하고,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하면, 그 사람이 삶에서 그런 것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내 마음의 표현이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어느 때 춤막이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도통한 아라한 이었는데 그 제자가 수백명이 되었습니다. 그 제자들이 항상 좌선하고 경을 외우고 법을 설하고 하는 그런 일을 열심히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 산에 사는 원숭이들이 항상 스님들의 흉내를 내었는데, 어느날 홍수가 나서 그 원숭이들이 전부 물에 떠내려가서 죽어버렸어요. 그 죽은 원숭이들이 원숭이 몸을 벗고 다음생에 사람 몸을 받아서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원숭이들은 스님들을 따라 염불의 흉내를 내고, 그 덕택으로 천상에 태어났음을 알게 되고, 자기들의 전생의 시체가 널려있는 것을 보고 천상에서 내려와서 그 원숭이 시체에다 향을 뿌리고 꽃을 뿌리고 하는데 주변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사실은 우리들은 도리천사람인데 스님의 정진을 흉내 내다가 도리천에 태어났는데 우리들의 전생의 몸을 수습하는 중입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이라 절에 가서 스님들께 여쭈어보니 원숭이들이 사실은 과거생에 외도들이었는데 어느날 산에 올라갔는데 스님들이 모여서 흙을 빗어서 토굴을 짓고 있는데, 꼭 다람쥐가 원숭이가 생생 달리는 것 같은데 저렇게 토굴을 짓고 있지만 저거는 아무 소용이 없어 비가 오면 다 떠내려 갈거다 라고 악담을 했는데 그 악담 때문에 외도들은 죽어서 원숭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스님들의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내어 천상에 태어났다하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말이 얼마나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말을 잘 다듬는데 따라서 우리들의 삶이 새롭게 전개된다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야바라밀을 하면서 항상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수험생 자녀를 둔 형제 여러분들은 시험을 위해서 항상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 생각 가운데 바라밀 위신력이 있어서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합니다.

 

저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후 스님이 되어서 4년이 지난 후 갑자기 법주스님께서 대학을 가라해서 예비고사 3개월 전에 갑자기 공부하게 되었는데, 영어 수학이 안 되어서 부처님 제가 한국불교를 위해서, 부처님 법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대학을 가는 길이라면 붙여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부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부처님 크신 위신력 속에 이 생애에 삶을 받은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곳 그것이 어떤 대학이든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을 저는 믿는다.

부모님께서 내 자녀가 그기를 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고, 이미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 이 사회 민족을 위해 큰 공헌을 하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믿는 자체가 그럴 때 그 힘이 자녀에게 가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 합격 후에 많이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면 되는 것이구나!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이라 생각하고 여러분께 반야법문을 설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계기가 주어졌다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그런 위치에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부처님의 무한공덕 창고 앞에 서 있어요. 무엇인가 어려움을 만난 그곳에 서 있어요. 문을 열면 무한공덕이 나오고 열지 않으면 사바세계에 살고 이 문은 부처님이 열어주지 않아요. 우리들 각자가 열어야합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 여는 것입니다.

 

* 법당의 메아리*

 

운명을 열어가는 권능자

 

[1] 우리의 본성은 법성이며 불성이다. 근원적 진리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무한의 지혜가 원래로 충만하다. 누구나 무한의 행복요건을 창출할 지혜와 권능을 현재 지니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에게는 본성진리의 무한성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아무리 물질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도 진실인즉 무한의 지혜가 현존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눈을 들어 우리의 생활 주변을 보자. 모든 문명이기가 당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근원인즉 보이지 않는 깊은 마음에서 비추어 낸 지혜에서 만들어 낸 성과가 아닌가 모든 존재는 현상을 넘어선 진리가 근원인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한을 창조하는 진리본성인 것을 깊이 믿고 끊임없는 정진으로 본성의 지혜, 본성의 능력, 본성의 평화를 현실위에 실현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 속 깊이 진리의 완전 원만성이 현존하는 것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2] 우리의 본성이 지극히 완전하고 원만하고 권능적인 진리성이므로 인간 생활은 원래로 밝고 원만하고 자유로운 것이다. 행복과 평화·환희가 인간 생활의 진실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솟아오르는 아침 해,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생각해 보자. 온 천지가 찬란한 광명으로 충만하지 않은가. 이처럼 인간 본래의 생활은 행복하고 환희로운 것인데도, 만약 현실 생활이 고난과 불행에 싸여 있다면 그것은 본성의 밝음을 믿지 않고 어두운 생각, 어두운 환경, 장애 요건들을 이해하고 그것이 마음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동천의 햇살은 찬란해도 구름이 걸쳤을 때 눈부신 아침 해를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스스로를 물질적 존재, 육체적 존재라고 인정하고 거기서 고난과 불행의 요인들의 존재를 인정할 때 고난과 불행, 재난을 몰고 오는 어두운 구름은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3] 우리가 진리적 존재이며, 본성이 진리이며 진리의 현실은 불변의 현존인 것을 믿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자처하고 업보 중생으로 생각하고 물질적 환경 조건의 종속자로 생각하고 있을 때 불행과 고난이라는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허물을 알면 뉘우치고 참회하여 마음을 비울 것이다. 본성의 태양이 찬란히 빛나고 무한한 행복의 요건이 끊임없이 방출하고 있음을 깊이 믿자. 우리의 자성(自性)은 본래로 청정하다. 때 묻을 수 없고, 죄지을 수 없고, 악할 수 없고, 결코 어두울 수 없다. 가난도 불행도 원래부터 없는 것이다. 어찌 찬란한 태양과 어둠이 공존할 수 있겠는가.

운명을 열어가는 권능자

이것이 무엇인가?

지난 준공법회 때 격려사를 하면서 순수불교라는 말을 썼습니다. 한 삼십년 전에도 불교학자들이 아함경을 위시한 초기불교 그 주변을 순수불교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는 반야바라밀 순수불교란 깨달음 자체만을 위주로 하는 것, 가령 불교를 접할 때 모든 것이 무상하다. 덧없다. 하는 것을 불교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것도 부처님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진짜 불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 일체가 고통인데 그것을 넘어서는 곳이 있다. 이것이 순수불교다. 그래서 깨달음 자체만을 인정하고 깨달음이 아닌 현상계에 벌어지는 이것을 부정하고, 그래서 깨닫고자 하는 그 불교를 이름하여 순수불교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불교는 여러 가르침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계속 인생은 고통스럽다 무아다 그것이 불교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고 말한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 길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걸 믿어야 합니다.

우리 호법발원문에 제일 먼저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이렇게 나옵니다. 무상을 뛰어넘는 일체개고를 뛰어넘는 길이 감로법입니다. 즉 생사가 없는 그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로법이고 진짜 불교입니다. 이것을 큰스님께서는 순수불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수불교 입장을 법당의 메아리 끝부분을 합송 하겠습니다.

“ 끊임없이 반야바라밀을 염하자. 진리의 태양이 우리의 진실이며 무한공덕 원만자재 평화 환희 이것이 우리 생명의 빛깔이며 현실이다. 넘쳐나는 바라밀 광명을 가슴에 담고 생각과 말과 일체 행동에 평화, 환희 넘치는 바라밀을 실현하자. 우리는 원래부터 스스로 밝은 운명을 열어가는 권능자인 것이다.”

여기에 순수불교 근본불교의 모든 것이 다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 꿈속에서는 온갖 괴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교의 근본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내가 처하고 있는 이 어려움 온갖 장애 이 모든 것들은 이것이 진실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그것에 매달려 그것을 벗어나려고 온갖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그런 것이 구나 인정을 해야 합니다.

아 현재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구나 이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기서 벗어나자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 매달려서 부처님 도와주세요 하는 것은 신의 도움을 받아서 그기에서 벗어나겠다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이고, 불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즉심즉불 마음이 부처다.

마음에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 해가 떴다. 가을이 와서 단풍이 들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따지는 마음이 있고 우리들은 그 마음을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아닙니다. 이렇게 따지고 아는 그 마음을 마음이라고 하는 그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인식을 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내가 가을이 와서 단풍이 졌다 올해 단풍은 유난히 곱다. 그렇게 아는 그 마음은 생각의 그림자다. 그런데 생각이란 것을 우리들은 자꾸 마음이라 한다. 그 생각을 일으키는 근본이 있어요. 생각의 그림자를 일단 부정을 해야 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니고, 근본적인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누가 만드느냐 그 세계는 바로 내가 만든 내 마음이 만든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 이것을 다른 말로 하여 본성이다 법성이다 혹은 자성이다 여래장이다.

그래서 지금 이 현생에 내가 알고 있는 이 모든 것은 꿈을 꾸는 것이고 이 꿈 속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이 마음을 쉬어야하고, 쉬는 방법이 수행이고 기도고 염불이고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했을 때 그기에는 일체 망념이 붙지 않는다. 허공이 꽉 차 있는 것처럼 그것을 믿고 라디오를 켜면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이미 주고 있는 것을 눈떠야합니다.

즉 마하반야바라밀 우리들의 본성 속에는 우리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 본래 병이 없는 모든 것이 다 갖쳐져 있어 그런데 우리들은 믿지 않는 겁니다. 못 보았으니까 믿지 않는 겁니다.

불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너가 본래부처라는 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부처생명으로 꽉 차 있고 그것이 너의 생명이라는 것을 봐라. 부처님 말씀을 보는 겁니다. 견성입니다. 견성이 성품을 보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내가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스님들이 30년 40년 정진을 해도 극소수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불교는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불교에서 믿는 불교가 되어야합니다. 내가 비록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못 보았지만 이것을 믿자. 그래서 내 생명이 부처님 한량없는 공덕을 내가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지금도 나에게 부어지고 있다는 그것을 믿는 겁니다.

그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그것을 믿고 내어 쓰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상태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불교다.

여러분은 지금 견성하는 불교, 보는 불교 말고 믿는 불교를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큰 다행입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 만큼 성취가 오고 그 성취방법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겁니다.

위의 [3]의 안 읽은 마지막 문단을 읽겠습니다.

끊임없이 반야바라밀을 염하자. 진리의 태양이 우리의 진실이며 무한공덕 원만자재 평화 환희 이것이 우리 생명의 빛깔이며 현실이다. 넘쳐나는 바라밀 광명을 가슴에 담고 생각과 말과 일체 행동에 평화, 환히 넘치는 바라밀을 실현하자. 우리는 원래부터 스스로 밝은 운명을 열어 가는 권능자인 것이다.

 

이 바라밀 말씀이 무어냐 완성자며, 부처님 완성자처럼 우리 각자가 완성자라는 사실에 눈을 떠야한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내어 쓰는 순간 우리 삶이 밝아지고 기뻐지고 그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입니다.

기쁜 삶은 내가 만든다. 돈이 있든 없든 신체가 장애로 태어났든 아침햇살을 보고 기뻐 할 수가 있고, 저 곱게 물든 가을 산천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장애와 관계없이 누구나 기뻐 할 수 있어요. 이 속에서 우리의 삶을 가꾸어 나가야겠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선지식을 가까이 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사론에 선지식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하 선지식은 물질만 주는 친우이고

중 선지식은 물질도 주고 법을 일러주는 친우

상 선지식은 불법만 알려주는 친우를 말한다.

 

왜 법만을 알려주는 사람이 상친우인가?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무량공덕생명임을 알려주어 그기 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

물질이 충족되고, 정신이 충족되고, 건강과 재산 등 모든 것이 나온다. 구사론에서 선지식의 세 종류 중에서 상선지식은 깨달음만 주는 사람이며,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일러주고, 그것을 터득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일러주는 사람이 상선지식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무쪼록 상선지식의 도움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 그 속에 내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인 곳에서 희망차고 즐거워지고 모두가 성공하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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