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8년 7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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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4.08.11 조회33,311회 댓글0건본문
이번주 일요일이면 하안거해제일과 백중회향일이라서 그런지 불광형제들의 수행 열기도 어느때 못지않게 뜨겁습니다. 우리시대에 이런 좋은 법당을 지어놓고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기도 할 수 있는 우리들은 참 복된 불자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의 귀한 호법법문을 듣기 위해 많은 불광형제들이 보광당에 모였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선덕(先德) 혜담스님 법문요약>
형제여러분! 날씨도 덥고 휴가철인데도 부처님전에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불법이라는 것, 부처님이라는 것은 인간을 구하고 국토를 맑히고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전에서 복을 구하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불법인양 생각할 수 있지만, 기실은 부처님법이라는 것은 인간자체를 구하는 것입니다. 불광사에서 호법발원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호법발원 내용가운데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이 원은 일반사람들의 원과는 다릅니다. 내가 사는 이 국토에 부처님감로법, 생사가 본래없는 그 법을 펴서 내 자신을 구하고 모든사람을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을 부처님나라로 만들겠다는 이 원은 제불보살의 원이고 성자들의 원입니다. 바로 호법발원한 형제여러분들은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이 되겠끔 원을 세우고 기도하고 정진하는 우리 불광인입니다.
<법당의 메아리>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 자비심을 살려내자
부처님 제세시에 한 재상의 이야기.....중략...이 이야기를 통해서
첫째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하다 어느 한곳도 멈춰있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삼라만상은 변해가고 덧없이 흘러간다.
두번째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복덕이 많으면 어떤 신도 어쩔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 불자들은 우란분절을 앞두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내가 복을 지어서 선망조상께 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복력이 있어야 나쁜업을 바꿀 수가 있다. 많은 복을 지어 놓으면 다른 신들도 그 사람을 어쩔수가 없다.
세번째가 수행을 해야한다. 도를 닦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가 있다 수행을 등한시하고 눈앞의 조그만 이익을 구하면 결국 바로 끝나버린다. 내가 잘산다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런데 수행해서 도를 닦는다면 그 모든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본래 내 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알게 된다.
네번째 수행을 하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한다. 이 이야기 중에 대신이 한가달로 태어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하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것이 죽어가는 사람을 자비심으로 살려주어서 마침내 출가를 시키는 인연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요즈음 대한민국에 어려운 사건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쁜짓을 못하게 하는 것이 자비심이다. 그 대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자비심이다. 부처님말씀도 자비심이 근본이고 역대조사스님도 자비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근본이다. 우리의 본성은 부처님자비심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의 본성 자비심을 살려내야한다.
법당의 메아리중에서
[1]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자유스러운 지배하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낯선 나그네가 와서 하룻밤 쉬어가자고 하였을 때 거절을 당한 사람이 오히며 거절한 집주인을 향하여 행복을 기원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비행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주인공이므로 자기 마음속에서 반감이 일어나는 것을 쫒아낼 수도 있고 자비한 마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자기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부처님의 자비심을 불러 일으켜 모든 사람에게 자비로 대한다면 상대방이 아무리 우리를 미워하더라도 마침내 저의 미움은 해소되고 화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자비는 상대방에게 자비심을 불러일으키고 미운 감정을 해소시키며 반감을 풀어주고 평화한 마음을 나게하여 이 땅에 평화한 정토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2] 기도를 성취하자면 악인이다 죄인이다 하는 불자답지 않은 인간은 원래 없음을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악인이다 죄인이다 하는 생각이 있는 한 미움의 감정이나 배척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미움이나 배척하는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과 대립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도는 성취되지 않는 것이다. 누구든 사람들을 향하여 악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을 버리자. 부처님 진리에는 악인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 모두가 부처님 성품이 충만한 불자다. 그러므로 진실로 악인은 있을 수 없고 원래로 선인만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그 진리를 믿는다면 이 땅에 진리와 선만이 있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불성을 가진 것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감사를 받쳐야한다. 어떤 사람과 담을 쌓고 척을 짓는 것은 바로 부처님과 담을 쌓고 척을 짓는 것이다. 내 생명이 부처님생명이듯이 다른사람도 다 불성생명이다. 모든 부처님께 담을 쌓고 척을 지으면 결코 이루어질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자비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속의 자비심을 살려내는 것이 기도성취할 수 있는 핵심중의 하나다.
[3] 진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모든 사람들은 지혜와 덕성과 그 밖의 풍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계가 나쁘다든지 악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표면 감각이 그렇게 인식할 따름이다. 우리는 마땅히 부처님의 진리적 존재를 믿을 것인가, 감각이 제공하는 인식에 따를 것인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불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으나 원래부터 부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세계에는 없다. 원래의 본성이 불성이 아닌가. 불성인 본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다만 감각에 나타난 물질의 힘만을 믿고 있는 동안은 불신자라고 우리는 부른다. 그에게 불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금덩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금인 줄은 모르고 자기는 빈궁자라고 알고 있지만 실로는 부자인 것이다. 물질은 항상 변하고 우리의 감각에는 유상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허무한 것이다.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은 허망하다고 하였다. 그 허망한 것을 참으로 있는 줄 알고 공포에 빠져 떨고 있는 것이 범부다. 우리는 불자이다. 영원한 행복자라는 것을 깊이 믿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마음과 본성
[1] 모든 중생은 다 같이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어서 차별이 없다. <열반경>
[2] 진여(眞如)의 자체성(自體性)은 모든 범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부처님들에 있어서 더하고 덜함이 없으며, 과거에 생긴 것도 아니며 미래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필경 영구하다. <기신론>
[3] 마음이란 본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번뇌에 더럽혀질 여지가 없거니 어찌 마음이 탐. 진. 치에 의해 더럽혀지며 삼세에 속하는 온갖 것에서 무엇을 마음이라 하랴. 과거의 마음은 없어졌고 미래의 마음은 오지 않았고 현재의 마음은 머물지 않아서 온갖 사물의 내재하는 본성이 인식되지 않으며, 온갖 사물의 외상(外相)이 인식되지 않으며 온갖 사물의 안도 겉도 아닌 중간의 모습도 인식되지 않는다. 마음이 본래 형상이 없고 머무는 것이 없기에 온갖 여래들께서도 이를 보지 못하셨거든 항차 그 밖의 사람들이 마음을 볼 수 있을까보냐. <심지관경>
[4]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그 본성이 공적(空寂)한 것이어서 보고 듣는 것이 아울러 불가능하다. 마음은 허깨비와 같아 실체(實體) 없는 것이건만 중생이 이리저리 헤아리는 까닭에 상(相)을 일으켜 고락(苦樂)을 받게 된다. 또 마음의 작용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시시각각으로 생멸(生滅)을 거듭해 잠시도 머무는 일이 없으며 큰 바람과도 같아서 찰나(刹那) 사이에 장소를 바꾸며 등불 같아서 여러 조건이 갖추어질 때에 일어나며 번개 같아서 수유(須由)도 머물지 아니한다. 원숭이 같아서 오욕(五慾)의 나무에서 노닐며 화가(畵家) 같아서 갖가지 형상을 그린다. 하인 같아서 여러 번뇌에 혹사당하며 도둑 같아서 공덕(功德)을 훔친다. 돼지 떼와 같아서 더러움을 즐기며 꿀벌 같아서 단맛이 있는 곳에 모여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본성은 가는 일도 없으며 달라지거나 작용하는 일이 없으며 크고 작음이 없으며 고락이 없으며 상주불멸(常住不滅)하여 가장 뛰어났느니라. <심지관경>
[5]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여 더러움에 물드는 일이 없다. 마치 하늘에 연기나 먼지, 구름, 안개 따위가 뒤덮여 밝고 깨끗하지 못한 경우에도 허공의 본성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온갖 중생도 바르지 않은 생각 탓으로 여러 번뇌를 일으키고는 있으나, 그 마음의 자성(自性)은 청정하여 더럽혀지는 일이 없다. 이같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으므로 그 마음의 자성은 청정하여서 해탈(解脫)을 얻게 되는 것이다. <승사유범천경>
[6] 마치 항사겁(恒沙怯)에 걸쳐 불이 탄다 해도 허공은 태우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나하나의 중생이 항사겁에 걸쳐 역죄(逆罪)에 해당하는 악한 행위를 한다 해도 그 심성은 더럽혀지지 않는다. 온갖 중생의 심성은 본래 청정해서 번뇌의 여러 결(結)이 더럽히지 못한다. 불이 타도 허공을 더럽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심성의 청정함은 물속의 달과도 같다. <승사유범천경>
하기자성 본성청정 (어찌 나의 본성품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았으며)
하기자성 본생불멸 (어찌 나의 본성품이 본래생멸이 아님을 알았으며)
하기자성 본자구족 (어찌 나의 본성품이 스스로 구족함을 알았으며)
하기자성 본무동요 (어찌 나의 본성품이 본래 동요가 없음을 알았으며)
하기자성 능생만법 (어찌 나의 본성품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오)
혜능스님이 홍인대사에게 인가를 받고 6조가 되는 오도송이다.
내 본성이 바로 부처님이다. 내 본래 생명자리는 청정하고 완전무결한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 마하반야바라밀의 자리다. 그 자리는 내 생각의 그림자가 아니고, 그것을 뚫고 들어간 자리다. 열심히 기도하면 나타난다. 내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 때는, 나의 본래청정자리 그것을 믿는 것이다. 만약 보지 못했더라도 100%로 믿고 사는 것이 불자들의 삶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