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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1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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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5.01.10 조회34,4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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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59년 1월 첫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불광사 선덕(先德) 혜담스님법문요약)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호법발원법회에 동참하신 불광형제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참으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진리를 통한 완성과 불국토성취를 원하시고, 우리 모두는 마하반야바라밀 속에서 같은 생명이고, 이 삼라만상과 내가 같은 생명이다 라고하는 그런 생각속에서 수행을 하고 생활을 해 나갈때 참으로 내가 가장 잘 사는 것이고 그러한 자세로 부처님을 믿는것이 바로 호법입니다.

* 법당의 메아리*

 부(富)를 이루는 원천

                                                                                             선덕(先德) 혜담스님

 [1]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물질적 환경을 우리는 흔히 부(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물질적 부를 구하고 그것을 쌓아 올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우리의 물질적 환경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여건들을 이루는 데는 근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다. 밝고 활기차고, 이웃을 돕고 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큰 뜻과 그러한 뜻을 이룰 수 있는 요소가 부처님에게서 주어져 있다는 확신과 감사가 마음에 이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라는 물질적 성과는 그 원인이 마음에 먼저 이루어져 있어 그 결과로서 우리 환경에 부 현상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정신적 원인을 알지 못하거나 등한히 하고서는 아무리 부를 구한다 해도 이루기 어렵다. 설사 일시적으로 부를 얻었다 하더라도 오래 지탱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을 밝혀야 한다. 부처님의 대자대비 무한 위신력이 나의 생명에서 넘쳐나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높은 인격, 드높은 이상, 줄기찬 정진이 함께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물질적 부는 구하면서도 진리의 실현, 인격의 향상을 구하는 사람은 적은 것이다. 물질적  부는 그것은 그림자다. 영원한 것이 못된다. 설사 일생동안 간직한 것이라도 죽을때는 못가지고 간다. 진리적 깨달음이나 수행력 그리고 높은 인격과 맑은 성품은 생명자체에 진리다운 가치를 더한 것이므로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썩고, 녹슬고, 변해가는 물량적 가치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영원한 가치인 밝은 깨달음과 인격의 향상, 정신세계의 청정원만을 목적으로하여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2] 우리의 주변을 둘러볼 때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부나 번영을  이루기 위하여 부처님 전에 기도도 하고 염불하며 진언을 외우는 것을 본다. 그렇게 하여 얻어진 부 또한 물질적 향락이나 생활의 쾌락을 위하여 대개들 쓰여 진다. 또 쇠약한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도 하지만 그렇게 하여 얻어진 육체적 정신적 정력은 그 쓰여 지는 곳이 육체의 쾌락이나 이기적 이익을 위하여 쓰여 지고 있지는 아니한가. 모름지기 스스로 지혜와 덕성을 연마하고 이웃과 사회에 이로움을 주기 위하여 그 육체적 정신적 정력이 쓰여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에게서 공급받은 부나 건강은 부처님의 자비하신 뜻을 살려 사용되지 않을 때 부의 근원이 막힌 결과가 되므로 기도의 공덕은 사라지고 경제적, 육체적 발전도 시들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람의 육체에는 즐겁다든가 불쾌하다는 감각이 있는 이상 불쾌보다는 유쾌하고 즐거운 것을 구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육체는 높고 아름다운 뜻을 실현하는 도구이므로 도구를 잘 관리도 해야겠지만 도구의 향락을 위하여 정신이 그 도구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근원적 생명인 진리에 위배된다. 우리들은 어느 때나 근원 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를 이루는 원천은 그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부처님에게서 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니라 진리에서 온 것이다. 그 진리가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부를 이룬 것이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부처다. 그 마음을 내가 잘 쓰야 한다. 모든것이 사실은 부처님의 은덕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자체가 부처님의 크신은덕이다. 진리속에서는 모든것이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도리를 알았을 때,자연적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 한문에는 유유상종이라고 끼리끼리 모인다고 감사합니다 하면 감사한 일이 자꾸 생긴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라 모든것은 마음이 만든다. 피상적으로 알면 안되고 계속 수행을 해서 정말 느껴야한다.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계속하다보면 저절로 온 세계가 부처님의 크신 은혜임을 저절로 알게된다. 부처님의 대자대비 무한의 위신력이 나에게 넘쳐나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계속 무엇을 구하는 것에 국집한다. 그러나 불교는 내가 가진 모든 집착을 놓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을 계속 염송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내 생명이 있다. 다른 말로 마하반야바라밀이다. 그런데 그 마하반야바라밀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생명이다. 나의 생명은 모든 권능을 다 가진 마하반야바라밀 절대의 생명이다.  내 생활이 마하반야바라밀로 바뀌어야 한다. 그럴 때 내 삶에 기쁨이 온다.

 

 *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만군을 이긴 사람

42장경 말씀

 [1] 대개 도를 보는 사람은 마치 횃불을 가지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면 어두움은 곧 없어지고, 밝음만 홀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를 배워서 진리를 보면 무명(無明)은 곧 없어지고, 밝음만 항상 있게 되느니라.

 [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 몸 가운데 사대(四大)는 각기 이름은 있지만 실다운 나는 도무지 없다고 생각하라. 나가 이미 없으니 그것은 환(幻)과 같은 것이다."

  [3]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애욕은 사람에게 있어 마치 횃불을 잡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손을 태울 환(患)을 당하는 것이다."

  [4]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게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물에 띄운 나무가 물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양쪽 기슭에도 걸리지 않고 사람에게 잡히거나 소용돌이에 빠지지도 않고 또한 썩지도 않으면 나는 이 나무는 틀림없이 바다에 들어갈 것을 보장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정욕에도 빠지지 않고 삿된 일에도 빠지지 않으며 오로지 힘을 다해 무위(無爲)로 나아간다면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을 보장한다."

 [5]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대게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한 사람이 만 사람을 상대하여 싸우는 것과 같으니, 갑옷을 입고 문을 나서자 그만 겁이 나서 뜻이 약해지는 자도 있고 혹은 반쯤 가서 물러서는 자도 있으며 혹은 맞붙어 싸우다가 죽는 자도 있고 혹은 이겨서 돌아오는 자도 있다. 수행인이 도를 배울 때에는 그 마음을 굳게 가져서 힘써 나아가 용맹하여 앞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악마를 쳐부수어야만 도의 열매를 얻는 것이다."

 [6]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불자가 나에게 수 천리를 떠나 있더라도 계율을 항상 생각하면 반드시 도를 이룰 수 있겠지만, 설사 내 좌우에 있어 항상 나를 보더라도 계율을 쫒지 아니하면 마침내 도는 얻지 못할 것이다."

 [7] 부처님께서 수행자에게 물었다.

 " 사람은 목숨이 얼마 동안이냐?" "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 너는 아직 도를 모른다."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이냐?" "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 너는 아직 도를 모른다."

 또 다른 수행인에게 물었다.

"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이냐?" " 숨 쉬는 사이입니다."

 " 옳다. 너는 도를 안다."

 [8]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소가 깊은 진흙탕에 빠졌을 때에 피로가 비록 극도에 달하였더라도 좌우를 돌볼 겨를이 없다가 진흙탕을 벗어나 비로소 숨을 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수행인은 마땅히 관하라. 정욕은 진흙탕보다도 더한 것이다. 곧은 마음으로 항상 도를 생각하여야 괴로움을 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2장경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최초의 경전이며 중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경전이라는 인식이 되고 있는 경전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일한 경전이 아니고 42가지의 부처님의 말씀이 혼재되어 있고 대승과 소승이 합해진 경전이다.

 우리가 도를 행한다는 것은 어두운 방에 들어갈 때 횃불을 들고 들어가기 때문에 밝음이 그냥 어두움을 없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횃불을 들지않고 어두움이 어디 있을까 어두움의 원인을 계속 찾아 들어가는 것은 도를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두움에 매몰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의 등불을 든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은 어두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도를 행하는 사람은 횃불을 든 입장입니다.

 내 몸 가운데는 4대(지.수.화.풍)도 없고 오온(색.수.상.행.식)도 없는 것이다. 철두철미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본래 없는 것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광덕 큰스님의 반야심경 강의를 보면 공은 석공과 체공으로 나누는데 석공은 공을 분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지수화풍 오온 감각표상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합해져서 내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내 몸은 없다는 말이다하는 것을 석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체공은 이것을 분석하지 않고 전체를 보면 모두 없다는 것이다. 내 몸뚱이 전체가 본래 없다는 것을 휜히 보는 것, 그것을 이름하여 체공이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소라는 사대가 없으면서 지대라는 땅의 성품도 없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철저히 없는 것이다. 내가 없기 때문에 짜증내고 질투하는 그런 나도 없는 거지요. 내가 없다는 것을  알면 그 자리에서 진리가 나타난다. 예를들어 비가 올때 구름이 흘러가버리면 하늘이 나타난다. 그 하늘이 내 생명이다. 짜증내고 불평불만하는 그것이 다 없다고하는 것을 다 제거해버리면 그기서 내 본성이 나타난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그것이 나타난다. 실지로 마하반야바라밀은 공을 넘어선 자리다 온갖 공덕이 가득한 자리다. 하늘이 나타나듯이 내가 모든것을 마음을 다 비워 버렸을 때 여기에 절대적인 자리, 행복이 가득한 자리,온갖 공덕이 있는 자리가 나타납니다.  그 자리를 다 내어쓰기 위해서 우리들은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 염송하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숨쉬는 사이에 있다. 그런데 순간에 사는 이 생명을 영원히 연결시켜주는 것이 이게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내 생명은 죽지 않는 생명이다. "나무아미타불" 무랑광무량수 한량없는 광명, 한량없는 수명이리는 말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이 호흡지간에 있지만 이것을 영원히 이어주는 것이 마하반야바라밀생명이다. 내 생명이 무량광 무량수라고 여기에 눈을 떴을 때 죽을때도 편안히 죽을 수 있고 그 다음 생애도 그런곳에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42장경에 나오는 말씀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우리가 도를 배우고 지혜를 닦는 사람들로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돌이켜봐서 항상 그 결과로서 그래 내 생명은 죽지않는 생명, 마하반야바라밀생명, 모든 공덕을 다 갖추고 있는 절대적인 생명이라는 것에 눈을 떠서 여러분의 생활이 항상 편안하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그런 생활이 되기를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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