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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3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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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희 작성일2015.03.07 조회34,6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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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3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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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사 선덕 혜담스님 법문요약)
 음력으로 을미년 설을 지내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호법발원법회일입니다. 금년 한해도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 속에서 불광 형제여러분들 기쁨과 성취가 함께해서 행복이 가득하기를 축원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새롭게 호법발원하신 26명 분들과 지금까지 호법발원하신 분들 11,625명 모든 불광형제들에게 을미년 한해가 행복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불법을 만났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그 말이 너무나 와 다았고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이것이다. 결심을 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직장을 다니다가 출가했는데 출가 후에 문자공부를 피상적으로 공부하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서 어느 날 불교를 점점 깊이 알게 되면서 불법은 사람을 참으로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구나! 모든 사람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 진실한 완성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기뻐하고 다정히 손잡고 다함께 성장하는 것이 바로 불교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불법은 완성을 지향한다. 부처님은 절대의 완성자이시고 우리들은 중생으로서 상대적인 존재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완성되어가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면 완성자가 아니다. 우리들은 자유롭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구해지지 않고, 무엇인가 모자라서 헉헉대고 살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망상을 부리면서 무엇인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구해갑니다. 그것은 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성도하시기 전까지는 완성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은 생로병사라는 고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출가해서 6년 고행을 하셨고 그리고 마침내 선정을 닦아서 자기 본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 생명 마음자리는 본래 생멸이 없는 우주의 본체 그 자체구나! 이것을 깨닫고, 무엇인가 구하려고 근심걱정이 가득 차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줘야겠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불교의 시작이다. 불교라는 것은 바로 인간을 완성시키는, 인간을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 불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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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법발원문의 가장 핵심이 감로법입니다. 생사가 없는 법, 본래부처라는 것을 아는 도리 그것이 바로 감로법입니다. 이 감로법을 영원히 이 세상에 편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생사가 없는 길로 인도하고 모든 사람을 완성시키고 번뇌가 없는 그 자리에 서게 하고, 마침내 이 국토를 완성시키고 역사를 완성시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널리 펴는 것을 호법발원이라합니다.
지금 현실의 세상은 인간의 본성을 훼손하고 학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사회구조 자체가 인간을 동물이라는 쪽으로 몰아넣는 겁니다. 모든 가치관을 돈을 버는 쪽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동물들은 본성대로 살기 때문에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축구 야구 악기연주등 다양한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자체는 다양한 많은 기쁨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돈만 많이 버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본래목적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왜 살아야하는지 돈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그게 호법의 하나입니다. 호법이란 개인적으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을 깨닫게 해서 그 속에서 한없는 기쁨과 보람의 삶을 살게끔 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제도 자체가 돈을 치닫는 사회에서는 한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서 본성을 찾아도 안 되지요. 그래서 정법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는 것도 있지만, 사회분위기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키우는 쪽으로 가야 그 속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내 생명이 죄인이 아니고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호법의 두 번째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회여건자체가 그렇게 사람을 완성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도 또한 호법발원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고, 내가 호법발원을 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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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삼학은 깨달음의 길
 
[1]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할 3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이다. 계학이라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또한 수행자로서 기키지 아니하면 안 될 계행을 지녀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5가지 감관(感官)의 입구를 지켜서 작은 허물도 두려워하며 지성스럽게 행을 닦아가고 힘쓰는 것이다. 정학이라 하는 것은 방자스런 욕심을 떠나 착하지 않은 것을 멀리하며 깊은 마음의 안정에 드는 것이다. 혜학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없앤 것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없는 데에 이르는 길인 것을 밝게 알아서 깨달음을 얻는 지혜를 닦는 것이다. 이 삼학을 배우는 사람을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는 것이다.
 
[2] 나귀가 소의 털빛을 한 것도 아니고 목소리도 소와 다르며 뿔도 없는데, 이 나귀가 소의 무리를 따라 가면서 나도 소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이처럼 계.정.혜의 삼학을 배우지 않으면서 나는 도를 구하는 자라든가 부처님 제자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될 말이 아니다. 농부가 가을에 수확을 얻기 위해서 이른 봄부터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혹은 물을 주고 풀을 뽑아 가꾼다. 이처럼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삼학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농부가 아무리 오늘 하루 동안에 싹이 나고 내일 하루 동안에 자라서 이삭이 나고 모레 하루 동안에 수확을 바라더라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도 오늘 번뇌를 쉬고 내일 집착을 떠나며 모레 깨달음을 이루는 불가사의한 도리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자는 땅에 뿌려진 다음 농부의
땀과 괴로움과 또한 계절의 육성을 받아서 싹이 트고 자라고 이윽고 열매를 맺는다.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이와 같아서 계.정.혜의 삼학을 닦고 있는 동안에 차차 번뇌가 멸하고 집착을 여의게 되며 이윽고 깨달음을 얻는 때가 오는 것이다.
 
[3] 세간의 영화를 동경하고 애욕에 빠져 마음이 산란하면서 깨달음의 길에 들고자 하면 그것은 되기 어렵다. 세간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과 도를 즐기는 것은 같지 않다. 앞서도 말한 바처럼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이 세간의 즐거움에 빠져 있으면 미혹의 괴로움이 나고 마음이 도를 즐기면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마음을 맑게 하여 가르침을 지키고 계를 가져야 한다. 계를 가지면 스스로 정을 얻고, 정을 얻으면 지혜가 밝아지며 고요하고 밝은 지혜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참으로 삼학은 깨달음의 길이다. 삼학을 배우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오랫동안 생사의 바다를 헤맨다. 도에 들어가 다툼을 버리고 고요히 마음을 닦아 열반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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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맞이해서 계.정.혜 삼학에 대해서 공부할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말만 불자다. 처음에는 누구나 현세의 이익을 바라면서 무엇인가 구하는 생각이 있어서 이것이 잘 안되어서 종교에 의지하는데 불교를 믿다보면 불교의 관점이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이 불교임을 깨닫게 되고,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라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계를 지닌다는 말이 나옵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무한공덕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세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그 첫 번째가 계를 지녀야한다. 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근본이 되는 계는 오계다. 첫째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소극적이 아닌 모든 중생에 대해서 자비심을 가져라는 것이고,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끊임없이 베풀어라 보시를 하라는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은 항상 청정한 행을 하라는 말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진실을 말하고, 악구, 양설, 기어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을 마셔 취하지 말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항상 깨어 있으라 성성적적해라 하는 것이다.
계는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금강경에 지계수복자 계를 지녀서 복을 닦는다는 뜻이다.
 
 계의 근본은 본성의 내 마음 내 행동이 불생불멸하고 불구부정하고 부증불감으로 내 마음을 쓰는 것이 바로 계를 지니는 겁니다. 나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으로 태어난 절대적인 생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계를 지니는 것이다. 그 자체를 지니고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요히 보는 것이 정입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계의 그릇이 튼실해야 그기에 물을 담았을 때 물에 달이 비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계를 받는다는 것은 계의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내 마음이라는 그릇을 만드는데 이 그릇을 만드는 것이 바로 계 자체인데 그래서 깨어지지 않게 계를 지키고 있는 것인데, 물을 담았을 때 출렁거리면 달빛이 안 비칩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바로 정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것도 바로 이 정의 힘에 의해서입니다. 이 정이라는 것은 힘써 닦아야한다. 우리 불광에서는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해서 정을 닦아가는 것인데, 다른데서는 참선을 많이 한다.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면 의정이 잘 안 생깁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기도를 하더라도 그 형상에 몰입되어 버려서 형상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근본적으로 형상을 그릴 수 없다. 그래서 그릴 수 없고, 얻을 바 없는 그 마하반야바라밀을 깊이 염송해 갈 때 바로 정에 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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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할 때 처음에는 같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법회에 와서 염송하고, 법등모임 때 염송하고, 절에 와서 염송하고 그러면 차츰차츰 마하반야바라밀이 내 속에 들어와요. 그럴 때는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서도 염송하고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염송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심으로 노력할 때 정이 형성됩니다. 처음에는 마하반야바라밀 말 자체를, 그저 내가 내 소리를, 내 귀로 들으면 됩니다. 처음에는 큰 소리로 해야 됩니다. 자꾸 하다보면 소리가 적어져도 마하반야바라밀을 하고 있는 거고, 중얼중얼해도 마하반야바라밀이 되고 계속하다보면 정에 들기에 가까이 오면 일종의 관 같은 것이 생겨요. 무언가 밝고 투명한 파란 구슬 같은 것이 나타나요 이것이 정념에 가까운 겁니다. 그런 맑고 투명한 무엇이 현전하는 겁니다. 그럴 때 정념이 되고 더 나아가면 무념이 됩니다. 그런 파란 것도 없어져 제가 파랗다하는 것도 제 짐작이고 하였튼 경에서는 맑고 투명한 무엇인가 나타나고, 그것마저 없어지면 무념이 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보면, 그 정에서 보면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됩니다.
 경에 보면 부처님이 성불하실 때 일체중생이 동시에 성불하는 것이 나옵니다. 어째서 부처님이 성불하실 때 일체중생이 성불 했는가 이런 것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즉 진리에 눈을 떴을 때 이런 것이 이해가 되고 아! 그렇구나하고 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 조사스님이 하신 말씀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눈을 떤 후에는 역대조사를 부정하지 않고 부처님말씀을 부정하지 않고 스님들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았다하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인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눈을 뜨고 보면 이게 사실인 것을 압니다. 부처님은 절대 거짓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못 보는 겁니다. 눈을 뜨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장엄스러운 세상이고 내가 얼마나 부처님 진리광명 속에 놓여 있는가? 그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눈을 뜬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닦아나갈 때 여기에 지혜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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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혜라는 것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내 생명이 한량없는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것을 보게 되고 여기에 눈뜨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머리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로써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구나! 나는 무량공덕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구나! 내가 원래 부처구나!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온전히 극락세계 못지 않은 그런 장엄스러운, 유마경에 말씀드리는 보장엄국토 그런 세계에 내가 태어난 존재구나! 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이 온몸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그럴 때 기쁨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많은 나라입니다. 왜 자살합니까? 사는데 의미를 못 찾아서입니다. 그런데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다 보면 정에 들면 그기에서 기쁨이 나옵니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장엄스러운 것인가! 아! 내 삶이 얼마나 훌륭한 삶인가! 이 세상이 정말 극락이구나!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정말 고맙구나! 이걸 알게 되요 그래서 사는 것이 즐거워지고 기쁘지고 모든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하루하루가 굳세어지는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힘이 생기는 거야 이래서 삶이 기쁘지고 힘이 생기고 모자람이 없고 그 삶에 가면, 그게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의 삶을 사는 거야! 이게 대 지혜입니다. 근본적으로 마하반야바라밀생명을 보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기뻐지고 보람이 생기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계.정.혜 삼학을 항상 잘 닦아서 이 속에서 내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불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내가 마하반야바라밀법문을 만났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특권의식을 가져도 좋습니다. 평생 불교를 믿어도 이 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 불광사 법당에 들어서면서부터 항상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긍지를 가지고 마라반야바라밀염송을 입으로만 아니라 진실로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염송으로 정에 들어서 내 생명이 한량없는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그 시간이 와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는 내 생명 속에 있는 그런 행복의 샘에서 물이 콸콸 솟아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살아야할 이유입니다. 이렇게 아시고 항상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해서 내 생명이 죄인이 아니고 박지범부가 아니고 부처님의 생명이라는 정말 기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를 깨달아서 행복된 삶을 살았으면 하면서 오늘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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