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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9년 2월 세째주 일요법회, 근대이후의 세계역사 흐름과 불광운동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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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주 작성일2015.03.18 조회34,6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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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괴로움에서 출발하고 괴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바른 길을 찾는 것이지요. 붓다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괴로움(一切皆苦)이라고 했는데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붓다가 말하는 괴로움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구하려 해도 구하지 못하는 것, 버리려 해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은 오온성고(五蘊盛苦) 즉 다섯가지 번뇌(貪,瞋,痴,慢,疑)가 많아지는 괴로움으로, 버리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괴로움에 있다고 합니다. 다른 괴로움은 피할 수 없지만 오음성고만은 노력하면 조금은 버릴 수도 있는, 우리 힘으로 어찌해볼 틈이 있는 괴로움이기에...

저  는 뭔지 몰랐던 오온성고의 뜻을 이렇게 해석한 것을 보니 뜻이 명확해지고 머리가 맑아진 듯 느껴집니다. 조금씩 버리면 조금씩 가벼워지겠지요. 마하반야바리밀

                             

            첫 기도

                                                           조지훈   

                                                                                           

     이 장벽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하늘이여

    그리운 이의 모습 그리운 사람의 손길을 막고 있는

    이 저주 받은 장벽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무참히 스러진 선의의 인간들

    그들의 푸른 한숨 속에 이끼가 앉아 있는 장벽을

    당신의 손으로 하루아침에 허물어 주십시오.

    다만 하나이고저-둘이 될수 없는 국토를

    아픈 배를 부벼주시는 약손같이 그렇게 자애롭게 

      쓸어 주십시오.

    이 가슴에서 저 가슴에로 종소리처럼 울려나가는

       우리 원이 올해사-

   모조리 터져 불붙고, 재가 되어도 이 장벽을 열어주십시오.

   빛을 주십시오. 황소처럼 터지는 울음을 주십시오, 하늘이어-

        

   금주의 법어

               근대 이후 세계 역사의 흐름과 불광운동의 방향

                                                                                                                           동국대학교 김성철 교수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너무나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자살률, 이혼율, 출산률, 성형수술 비율 등에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겉만 화려할 뿐 그 구성원들의 마음은 너무나 지쳐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법률, 제도, 가치관 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소급하여 추적해 보아야 한다.

   신문지상에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는데, 이는 미국의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고 주장한 이념으로, 멀리는 이담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에 기원을 두며, 더 멀리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에 그 뿌리를 둔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사회에서 신대륙과 식민지 개척의 첨병이었던 상업인들의 경제력이 전통적인 귀족과 왕을 능가하게 되고 결국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혁명 주도세력인 상업인의 이익을 반영하여 1804의 나폴레옹법전이 편찬되었는데 그 3대 원칙은 ̒소유권 절대주의̓̓̓̓̓̓̓̓̓̓̓̓̓̓̓' '계약자유주의 원칙' '과실책임주의'다. 즉 '상업적 인간'이 그 중심에 있다.

   이러한 나폴레옹 법전의 인간관은 지금 세계각국의 법률에 그대로 반영되어 지금 세계인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정치운동과 병행하여 1776년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하여 자유주의 경제이론을 제시하였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대의 막을 연다.

   그 후 이에 반발한 사회운동이 일어나면서 유럽사회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극한 대립하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진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세계는 이념적으로 양분되었는데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전후하여 시회주의 진영은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그 후 세계 각국은 신자유주의 원리에 순응하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는 그 최첨단에 서 있다.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보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전륜성왕과 같은 실리가의 길과 부처님과 같은 이념가의 길이다. 예를 들어 원시사회에서 추장이 실리가였다면 무당은 이념가였다. 중세유럽에서 교황은 이론가의 수장, 왕은 실리가의 우두머리였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사제인 바라문은 이념가인 반면 정치가인 크샤트리아와 상업인인 바이샤는 실리가에 속한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에서 '사'가 이념가라면 '농공상'은 실리가에 해당한다. CEO는 실리가, NGO는 이념가다. 실리가는 사회의 부를 창출하고 이념가는 그것이 공정하게 분배되게 만든다. 실리가는 무력을 통해 외적의 침입을 퇴치하고 이념가는 그런 무력이 구성원에게 행사되지 않도록 감시한다. 이 두 힘이 균형을 이룰 때 사회는 안정되고 번영하였다. 실리가와 이념가. 그 지향점은 상극이지만 우리사회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이끄는 두 마리의 말과 같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저울대는 신리의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제2의 불광운동은 그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 운동이고 불이중도의 실천이다. 불이중도를 자각할 때 삶과 죽음의 이분법이 타파되기에 종교적 고민이 해소되고 나와 남의 구분이 사라지기에 동체대비를 실천하며, 사회적 이분법인 차별을 방관하지 않고, 남북 분단의 이분법을 타파하기 위해 통일 운동에 나선다. 구체적으로는 '비교하지 않기 운동'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은 연기의 환멸문이며, 핸드를 잡고 안에서 보는 자동차의 모습이 유일하듯이 '유일한 삶'이고 '절대적 삶'이다.

   우리는 6.25당시 미국의 원조국으로 도움을 받았고 경제 개발에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에 대해 호의적이 반면 다른 나라들 중국 일본 서구각국도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가 많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관계도 다시 봐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경제와 문화의 우위를 차지한다고 여기는 서구의 문명도 콜럼버스 신대륙발견 이후이며 그 이전은 오히려 동양이 나은 것으로 보인다. 서양은 신대륙발견과 시민혁명이후 막대한 부의 축척하고, 모차르트, 베토벤, 칸트 등의 음악가와 사상가를 낳는 배경이 되고, 과학의 발달은 군사력과 운송수단의 발달을 가져와 세계를 지배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를 초기 자유주의사회라 할수 있다.

   그 후 좌와 우의 대립 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극한 대립을 유지하다가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오직 자본주의 사회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회는 엄청난 부의 증가와 사회복지 노동보장 등으로 외현상 더 나은 사회가 된 듯이 보이나 생활이 더 각박해지고 불행감을 느끼는 수가 더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현대사회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 중 분노는 법으로 제압하지만 탐욕을 오히려 조장하고 치심을 방치하는 듯 하다.

그러므로 현사회는 불자인 우리에게 견성과 반야(공성이 지혜)를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불성, 중도, 반야바라밀, 공은 같은 의미다 조주스님의 '무'도 유무 비유비무도 아닌 중도의 경지로 마음을 몰고 가라는 가르침이다. 불이에 대한 가르침이며, 양극단을 벗어나고 이분법을 타파하라는 메시지이다.

제법실상에서 우리는 살아있지도 않고 죽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세상을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의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비가 내린다고 할 때 비는 이미 내리는 비임을 상정하고 있고 다시 내린다는 언어를 중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적인 언어를 실상으로 알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우리의 이런 이중적이고 양변적인 틀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역설하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은 실상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다름의 한 쪽만을 보게 되면 개체가 강조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 사회의 병폐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자타불이, 동체대비, 불이 중도의 실천적 행을 할 때 모든 생명의 고통이 내 것으로 느끼기 되며, 생사의 이분법에서 벗어 날수 있다고 모든 불 보살이 역설하신다.

한반도의 분단도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의한 이해관계로 생겨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의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우리의 힘이 강해져 주도적으로 해결할 힘이 생겼기에 분단의 이분법을 타파하고 통일을 향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진정 우리는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통합적인 사고를 통한 사상적 중도와 자비심이 바탕이 된 남과 나의 견해에 대한 중도, 차별을 벗어난 사회정의의 구현을 해야 할뿐만 아니라 분단을 넘어선 통일을 이룩해야 할 때이다.


금주의 다짐

   부처님은 대자대비이시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혼자 있을 때 다정한 의지가 되시고, 어둠을 갈 때에는 밝은 등불이 되시고 고난의 숲을 갈 때에는 굳센 지혜와 용기가 되신다. 그러니 무엇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랴. 우리는 지혜와 힘을 뿌리는 타오르는 횃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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