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9년 3월 둘째주 일요법회. 광덕스님의 일음교 > 불광소식

함께하는 불광지혜를 닦고 자비를 실천하는 신행공동체 불광


불기2559년 3월 둘째주 일요법회. 광덕스님의 일음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은주 작성일2015.03.10 조회34,647회 댓글0건

본문

IMG614.jpg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오늘의 일요법회는 지장재일날과 겹쳐 보광당이 꽉차 더욱 여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법문을 하신 김호근 교수님께서도 자발적으로 참여한 600명이 넘은 법회에서 설법하신것은 처음이라고 찬탄하셨습니다. 점차 불광법회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차면서 신심이 넘치는 불광보살님들의 보리심이 넘쳐흘러, 제2의 불광운동으로 힘이 모아질 것을 발원드립니다
                                                              
IMG615.jpg

     금주의 법어 광덕스님의 일음교(一音敎)

                                                       동국대학교 김호성교수

    제2 불광운동의 사상적 뿌리, 일음교
   불교는 26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입니다. 그 긴 역사 동안 수많은 논서가 등장하고 다양한 사상이 대두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스님은 ‘불교교리발달’이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교리발달이라는 말 속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교학이 새로 성립되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님들이 여러 절에 다녀 보면 스님마다 법사마다 교수마다 법문과 가르침이 다르고, 제각각의 방법으로 기도와 수행을 가르치고 있어 혼란스럽기도 하고, 이 많은 스님들의 말씀이 모두 부처님의 법문에 부합되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 붓다의 선언은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이들이 불교를 책을 통해 교리적으로만 이해라고 신앙심이 빠지면서 기독교와 비교해 인간적인 측면으로 말할 것이 유래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타관은 극단적으로 전통적인 한국적 신앙이 배척되고 거부되는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방불교가 많이 들어와 한국 불교계의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승경전이 비불설 논쟁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대승경전과 선어록을 공부했으나 오늘날은 아함경 니까야 등이 부처님의 원음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대승과 소승이 새롭게 융합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융합과 비젼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현상입니다. 근현대 불교에서 이런 혼돈을 예상하여 처방을 내려주신 스님은 없었습니다. 오직 광덕스님은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IMG537.jpg

   광덕스님은 경전과 교리를 학술적으로만 바라보면 대승비불설 같은 주장이 등장하고 그 결과 불자들에게 혼란이 초래되고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불교는 학문이기 보다 살아있는 종교이고 믿음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광덕 스님은 불교의 모든 경전과 가르침은 ‘한 목소리에서 나온 가르침(一音敎)임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한 목소리의 근원은 부처님임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분해 놓은 초기경전, 대승경전 그 모두가 불설이라는 신앙을 철저히 가져야 해. 응병여약(應病與藥) 이라는 말 잘 알고 있지. 부처님은 중생의 병에 따라 그때그때 약을 주셨기에 천 가지 병에 천 가지 약 일뿐이야. 병은 중생성(衆生性)이고 약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지(慈悲). 병이 다르니까 물론 거기 따라 약도 다른 것은 당연한 일. 그런 까닭에 나는 부처님께서 아함과 대승을 동시에 설하였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어. 다만 약을 받는 입장,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 청중의 여러 가지 입장(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根機, 사람에 따른 성숙도)에 의해서 구분되고 나뉘어졌을 뿐이야. 그러므로 대소승이 모두 부처님의 직설이며 친설이지. 우리 불광의 입장은 대승비불설이라는 말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이고, 원래 그런 말은 없는 것이야.”
                                                   -김호성,『천수경의 새로운 연구』민족사. p.156.)
  스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첫째, 초기경전이나 대승경전을 막론하고 모든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임을 철저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둘째, 경전과 교리가 다양한 것은 중생의 근기가 다양하고, 병이 다양하기 때문에 처방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승님의 말씀을 종합하면 모든 불전은 깨달은 부처님의 ‘한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므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태도로 경전을 보는가에 따라 경전에 담긴 말씀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우를 만들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지혜롭다면 모든 경전은 우리들을 평화롭게 하는 감로의 샘이 될 것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의 보배 창고가 될 것입니다.
 
IMG612.jpg

  부처님은 일음으로 말하나 듣는 사람은 자기 모습대로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음으로 치나 중생은 미라는 종단 파라는 종단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일음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빛이고 일음일 뿐이나 중생의 근기가 달라 도레미라고 다르게 듣고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학의 할아버지격인 김동화박사님은 불교교리발달사를 설명하시면서 불교교리의 발달이라는 말은 잘못이라고 하시며, 부처님의 입장에서 봐야지 중생의 입장에서 봐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니다. 법의 근본에는 둘이 없으며 아함 대승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기경전을 연구하신 고익진 선생은 아함에서 반야 대승경전으로 시대적으로 발전되어 나온다고 하시나 광덕스님은 진리의 입장에서 일음을 주장했습니다. 경허스님께서도 각자 하나의 방법을 취하여 공부하는 것은 방편으로는 의미가 있으나 다른 방법을 인정하는 것이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2의 불광운동은 공동체운동이며 다른 말로 결사하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많은 결사가 있었는데, 결사는 새로운 교단의 흐름을 만들기 위한 물줄기이며 수행운동입니다. 제2의 불광운동은 새로운 물줄기를 만드는 공동체운동입니다. 새로운 물줄기는 전법입니다. 전법을 말하는 불교학자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전법으로 보리를 이루겠다는 분이 광덕스님 입니다. 보리심은 내가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고 이 거룩한 마음을 전하겠다는 것이 보리심이다.
    
  대만 불광사에서는 5명에서 20명이 모여 성운대사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독서회모임 있는데, 이런 모임수가 200여개가 된다고 한다. 김호성교수님도 수십개의 독서회를 결성하여 보리심을 성숙시키고 전법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런 소그룹의 독서회가 활성화 되면 교학과 신심을 향상시키고 전법을 하는 좋은 방편이며(불광사에서 법등모임을 통해 신앙생활을 돕고 전법하는 것처럼) 독서회의 성공여부는 리더의 역할과 단합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서회의 생명은 가지를 쳐서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광운동이 뿌리는 우리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법을 하는 것이며, 광덕스님을 이해하는 사람이 불광사 안에서만 있어서는 안되며, 모든 절 모든 곳에서 함께하고, 다른 학파들과도 회통하여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2의 불광운동은 앞으로 불교가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설정이며 지향점입니다. 오늘날 산적한 문제인 젊은이들의 방황, 고령화로 인한 노인문제, 한국불교의 세계화와 세계빈곤의 극복은 이제 종교계가 감당해야 하고 불자가 앞장서 해결해야할 시대적 요구라 여겨집니다. 이를 불광사는 다른 사찰보다 앞서 이런 문제를 바라보아 불광연구소에서 전법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광덕 큰스님의 의지이며 우리 불광불자 모두의 마음입니다.

금주의 다짐

만약 다른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대해올 때 원만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미워하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미움에서는 미움을, 원망에서는 원망을 낳는다. 상대가 진실 불자인 것을 믿고 공경하며 그가 지닌 착한 공덕을 관하자. 상대의 착한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내가 그의 진실을 관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알자.
IMG610.jpg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정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39길 35(석촌동 160–1번지)불광사 TEL. 02)413-6060FAX. 02)413-6781 링크트리. linktr.ee/bulkwangsa Copyright © 2023 BULKWANGS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