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9년 8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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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희 작성일2015.08.07 조회34,684회 댓글0건본문
불기 2559년 8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8월 최고로 무더운 날씨임에도 호법법문을 듣기위해 많은 불광형제들이 보광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집전하시는 스님들의 청아한 염불을 따라서 우리들의 마음도 한결 정화되고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법회가 열렸습니다.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 법문요약>
8월 날씨도 더운데 자리를 함께해주신 불광의 형제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오늘 호법법회에 임하면서 먼저 호법발원을 보겠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천수경에는 관세음보살의 서원이 나와 있고,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서원 가운데 원아속도일체중 원하건데 내가 빨리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보살님들의 서원과 지금 우리들이 이렇게 부처님 전에서 호법발원을 하는 이 서원이 불보살님들의 서원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불광사에서 법회를 통해서 많은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절에서 듣는 법문과 다른점은
첫째는 우리들 한사한사람이 범부중생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주장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이름이 중생일 뿐 바로 부처다. 한사람 한사람이 범부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죄업, 업보 그런 말들을 완전히 부정하는 그런 자세입니다.
세 번째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그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불국토를 원하면서 그 실현을 위해서 원을 가지고 지금 현재 이 땅에 왔다. 이 사실을 주창하고 있는 사실 이런 것들이 불광의 법문이 다른 절과 다르구나 느끼는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믿는 것이고,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반야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들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이 바로 부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따르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범부라고 생각하지만 부처님 말씀에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 부처님 말씀을 믿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닦는 것을 행하는 것이 수행이다. 내가 많은 죄를 지어서 108참회등 수행을 많이 해서 내가 지은 죄를 털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불자의 길은 아닙니다. 그럼 수행이 뭐냐?
모든 사람은 법성생명 부처님과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잘 안 믿어집니다. 내가 부처인 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을 100퍼센트 확신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는 방법이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고 바라밀염송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인 것을 알지 못하는 그 마음을 확실히 아는 쪽으로 자기 마음을 확신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이런 수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법당의 메아리*
무한창조력을 발휘하는 길.....호법월보 참조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무한창조력을 발휘하는 권능을 타고 났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이름해서 다른 말로 창조력이라 합니다. 불자인 인간은 무한창조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바로 부처님 진리생명, 법성생명임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범부가 아니고 부처님의 진리생명이라는 것은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 몸뚱아리는 나가 아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그 생명의 원천이 바로 나입니다. 내 생명이 바로 나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자리는 어떤 때는 육신을 포함합니다. 그 생명이라는 존재가 뭐냐? 범부생명이 아니고 부처님의 생명이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알게 됩니다. 내 생명이 돌덩이이면 돌덩이 일을 할 것이고, 내 생명이 부처님이면 부처님 일을 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초파일 때마다 항상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을 말한 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사실을 믿고 이것을 현실생활에 나타내기 위해서 발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냥 이럭저럭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서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하는 것도 창조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생명 무한창조력을 가진 생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생명이 바로 내 생명이기 때문에 저 지하수가 보이지 않지만 파이프로 쉴새 없이 물이 솟아나오듯이 내가 무한창조력을 가진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행할 때 내 속에는 한량없는 힘이 솟아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의 한량없는 공덕이 솟아나는데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법당의 메아리 2번 참조
인간이 불자라는 그 사실, 인간이라는 것은 바로 법성광명, 법성진여 무한공덕세계이고 그것이 곧 나 자신입니다. 내가 반야바라밀생명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바로 부처님의 자녀이다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위대한 “진리생명의 원천”임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진리생명이 어떻게 현출되는가? 그것은 내 생명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실현시킬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의 공덕생명이 나라고 하는 인격체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명은 범부생명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의 원천적인 생명 모든 생명을 현실화 시키는 그런 작업을 내가 하는 겁니다. 바로 수도꼭지입니다 즉 수도꼭지를 틀면 팔당호수의 물이 나오듯이 나를 통해서 부처님의 능력이 표출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물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내어쓸수 있는 그 꼭지가 바로 우리들의 개개인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생각이라는 것이 우연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속에 무한을 이루는 그런 것이 있다가, 대학입시를 맞이해서 수능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애가 좋은 성적을 받아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이다 하는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겁니다. 이미 내 속에 있는 마음이 이것이 현실적으로 입시라는 제도 속에서 우리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서 그런 삶이 전개되도록 원하는 그 마음이 구체성이 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훌륭한 삶을 살게 되어지이다 하는 이미 내 속에 있는 마음이 그런 형상을 띄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부처님의 공덕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 한량없는 공덕이 전부 합해져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한량없는 생명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고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우리들의 공덕생명자체는 무한이지만 이 무한한 것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막연하게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 내 생명이다. 내 생명 속에는 한량없는 것이 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기에는 구체성을 띄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원래 창조라하는 것은 무한정인 것을 하나의 특정한 것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바로 창조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한량없는 공덕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한량없는 공덕생명을 이것으로 나타나지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기정성 무한정성인데 한량없이 많은 것이고 이미 무엇무엇이라고 정해진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내 마음으로 딱 정해서 그것을 실현시키는 이것이 불자들의 발원이고 그것을 이름하여 무한창조라 하는 겁니다. 무한창조 할 수 있는 능력이 나한테 있는 겁니다. 먼저 내 마음이라는 것은 내 생명자리라는 것은 부처님의 생명과 동일해서 한량없는 공덕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는 결코 죄업만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내 내면세계에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 꽉차있는 그런 존재다 하는 것을 100프로 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믿어져요. 그것을 그걸 믿기 위해서 우리 불광에서는 마하반야바라밀염송을 끊임없이 할 때 어느날 갑자기 이것이 100프로 믿어집니다. 아! 내 생명이 바로 한량없는 공덕생명이구나! 나는 결코 핍박되지 않는 절대적인 생명이다 하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한량없는 공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특정한 것을 내어 쓰는 겁니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것입니다. 그 확정한 것을 믿고 그렇게 전개 시키는 것이 바로 불자들의 기도입니다. 막연하게 신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의 절대적인 생명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지는 것이지 막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 합니다. 본래 내 생명자리가 부처님생명자리와 똑같아 가지고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우리들은 이것을 내어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되고 그 속에서 보람이 나오고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에서 2번 참조
만약 해탈하는 법을 구한다면 응당 만족하는 법을 배워 익혀야하는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기쁨이 생깁니다. 기쁨이야말로 바로 불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 자체가 기쁨과 보람이 있을 때 우리들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행복이라는 것이 신체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뜨면 이 세상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물을 봐도 전부 기쁨 뿐입니다. 꽃을 보면 꽃이 빙긋이 웃고 있고, 나뭇잎이 바람에 소리 내어 웃고 있습니다. 이건 눈을 뜰 때 가능합니다. 눈을 뜨는 것이 무어냐? 바라밀염송을 통해서 내 생명이 바로 한량없는 공덕생명이구나 온 천지가 부처님생명으로 꽉 차 있구나하고 눈을 뜨는 겁니다. 그럴 때 삶 자체가 기쁨으로 다가 옵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기쁘고 저녁에 잠을 자기 위해서 누워도 기쁜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불자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이름해서 무한창조를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을 해서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며 결코 어디에도 주저함이 없는 무한의 창조력을 지닌 그런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살아갈 때 거기에는 기쁨과 보람이 나는 것이고 그것을 이름해서 사람이 잘 산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잘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름해서 불자들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통해서 내 생명이 바로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것에 빨리 눈을 떠서 공덕생명을 항상 누리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