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9년8월 관음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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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5.08.14 조회34,661회 댓글0건본문

매년 자연의 변화는 기후부터 오고 있나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무더운 더위가 가뭄과 함께 나라를 뜨겁게 만들고 있다. 잠깐 장마 비가 왔지만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란다. 아직도 소양강 댐의 수위는 낮으며 댐 주위는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고 한다. 자연은 왜 이렇게 변하고 있을까? 우리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자연을 거역해도 되는 걸까? 불광사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보았다. 도로가 막하고 운전자의 심기가 불편해져 뜨거운 열기가 습한 온도와 함께 모든 것을 짜증나게 한다.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불광사에서 기도를 열심히 해야겠다면 보광당에 들어선다. 토요일의 관음재일 인데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불자들이 많지가 않다.

주지스님의 관음법문의 첫 마디도 휴가인데 불광사로 휴가를 와서 고맙다는 인사로 시작하신다. 대입시생들을 위한 축원문을 독송하고 주지스님의 인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세 번 독송을 한다. 보통 일곱 번을 했는데...스님은 이렇게 운을 떼신다. “시원한 법문을 해야하는 오늘 법문은 좀 답답한 법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입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의 간절한 마음을 기도해야 하는데... 우리 불교에서는 수험생을 둔 보살들이 없었으면 불교의 존재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모두들 웃음이 번진다. 늘 주지스님의 법문은 딱딱하지 않아 좋다. 쉽고 유머러스한 법문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의심이 많은 마음은 바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근원이다. 불교는 의심의 종교이라고 하나 수행에서의 의심과 생활에서의 의심은 다르다. 수행에서의 의심은 답을 찾지 못해 생기는 의심이고 생활 속에서의 의심은 부정적 생각에서 일어나는 의심이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의 의심은 지나친 관심이 상대에게 간섭으로 비쳐지면서 생긴다. 간섭이라는 오해에서 다툼이 생긴다. 예를 들어 수험생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았는데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면 엄마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고 몇 마디를 하게 되면 지나친 간섭이라는 자식들은 삐지게 된다.”
“우리가 살아 가며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고시 공부를 하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언제나 떨어지면 어떻하나는 생각으로 힘들어 했는데 ‘나는 합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바꾸어서 공부를 했더니 합격하였다고 한다. 무조건 합격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떨어진다는 불안한 감정을 버려라. 그리고 불광사의 수험생을 둔 보살님들을 위해 강남의 유명한 대입 강사를 초청하여 정보를 줄텐데 많은 불자들이 참석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행복의 기준이 무어라고 생각하나? 행복의 기준은 만족에 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면 마음이 행복하고 큰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하다. 만족하는 마음이 바로 긍정적인 마음과 같다. 영국에서 거주할 때, 우울증이 있는 교민들을 많이 치료해 주었는데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고 절에서 기도하며 때론 큰 소리 내어 독송을 하게 한 것 뿐이었지만 좋아들 했다. 조용한 곳에서(절간) 자신을 터 놓고 이야기하고 부처님 말씀(경)을 소리내어 읽는 것 뿐이지만 사람들은 마음 속에 뭉쳐있는 부정적 생각, 즉 외로움을 다 떨쳐 버리니 자연히 치유가 된 것이다”

스님은 특유의 유머로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난 거울을 볼 적마다 짜증이 나.” 모두들 의아해한다. 여기저기서 “왜요?”한다. 스님은 웃음도 없이 능청(?)스럽게 “너무 잘 생겼거든. 너무 완벽하게 생겨 짜증이 나.” 보광당이 들썩일 만큼 웃음꽃이 핀다. 이번에는 스님 자신도 소리내어 웃는다. 스님도 웃고, 불자들도 웃는 보광당의 모습이 바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합해지는 것 같다.

이번 달의 문화 공연은 보현구의 섹스폰과 기타 연주이었다. 여러 곳에 소리 보시를 한다는 두 거사는 조심스럽게 연주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그리고 섹스폰 연주자는 노래를 너무 조심조심하면서 불러 노래에 힘이 없다. 관중들의 박수를 유도하며 즐겁게 하려고, 마치 노인대학 노래교실에서 처럼 호응도를 유발하려고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모두 쑥스러운 반응이다. 그래도 열심히 연주를 한다. 모두들 좋아하는 ‘만남’에서부터 즐거운 토로트, 그리고 노래로 ‘내 나이가 어때서’까지 참 열심히 연주를 해준다. 모든 일에는 열성이 있으면 다 통한다. 보광당 안을 즐거운 연주로 가득채운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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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관음법문은 다음과 같다.
‘부정한 것이 가슴에 머물지 않게 하라’
우리 생활 주변에서 밝음을 저해(沮害)하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흔히 있는 것이 감정대립입니다. 대립된 감정에서 미움이 생기고 이것이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또 불안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법성(法性)이라 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이 진리는 우리를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닷물을 고래도 마시고 조그마한 멸치도 마시는 것처럼 모두가 그 한 진리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밝음을 지향해서 살면서도 밝음의 문을 열어서 자기 생명에 깃든 진리를 보려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들은 자칫 이유를 붙여서 대립을 보고 불안해하며 어둠에 환작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대립하고 미워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진리(眞理)생명과 어긋난 것을 향하기 때문에 생명이 갖고 있는 부처님 공덕은 누리지 못하고 고통과 불행밖에 자기에겐 수입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 어떤 이유에서든 대립(對立)은 곧 부처님과 대립입니다. 거기서 행복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대립하는 것입니까. 불행을 위해서 입니까, 미워하고 따져서 얻는 것은 파탄과 병과 불행밖에 올 것이 없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원하거든 따지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밝음을 바라고 행복을 바라면서도 온갖 이유를 붙여가지고 자기 가슴에서는 불행을 지어가고 있습니다. 대립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는 이런 것들을 꽉 쥐고 앉아 있습니다. 자기 가슴을 이런 어두운 것으로 꽉 채우고 있는데 불행밖에 올 게 더 있습니까. 진실한 밝음을 배반하는 우리 생활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고, 나의 생명에 깃들어 있는 끊임없는 밝음인 진리생명을 깊이 긍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밝음과 기쁨과 칭찬과 용기와 감사를 채우면서 살아야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어두운 것, 부정적인 것이 가슴에 머물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미움을, 슬픔을, 우울을, 소극적인 것을 마음에서 털어 버려야 합니다. 진리를 생명의 진실 존재로 전적으로 받아들입시다.
광덕스님 ⌜메아리 없는 골짜기⌟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