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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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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희 작성일2015.10.10 조회34,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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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10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청명한 가을날 굳이 에어컨이나 히터 전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사람에게 제일 쾌적한 온도인 일년중 최상의 기후인 가을날인
오늘도 보광당 법당에는 기도집전스님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정성스런 천수경 독송과 예불
마하반야바라밀염송으로 거룩한 호법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 법문요약)
 호법법회에 동참해주신 형제여러분들께 찬탄과 감사를 드리며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면서 풍만한 만족감이 드는 좋은 계절인데 비가 안와서 걱정하시면서 우리형제들이 기도를 할때 비가 와서 모두가 풍족한 생활이 되도록 원을 갖고 기도를 했으면 하시면서 오늘 법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법당의 메아리*
내 생명은 은혜의 광명이다.
 진리의 태양인 부처님 은혜
 우리 불광법회에서는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고 진리가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하는 것을 항상 듣고,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염송을 하고, 내 생명이 마하반야바라밀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는 것은 최상의 수행법입니다. 긍지를 가져야한다. 우리들은 최상의 법문을 듣고 반야바라밀 수행을 하고 그것으로써 내 삶을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일과정진을 하지 않으면 불자라 할 수 없으며, 모든 수행의 촛점은 내 생명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잊지 않게 하는 수행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과정진입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거기에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지혜와 자비력이 넘치고 있음을 마음으로 보고 직관해나가는 그런 수행, 이것이 바로 우리들 수행의 목표이고 이외 궁극적인 깨달음의 목적은 없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기도를 하는데도 내가 살아가는데 무슨 어려움이 생긴다 하면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음에 눈을 떠야한다. 내 환경이 나를 일깨워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을 하면 어둠의 그림자는 없어진다. 항상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하면서 그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형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호법월보참조>
 부처님의 무한하고 완전한 진리의 공덕이 내 마음에 완전히 드러나고, 부처님의 진리공덕인 무한의 지혜가 내 마음에 드러나며, 부처님의 진리의 자비와 진리의 풍요와 진리의 조화와 진리의 환희와 진리의 용기가 우리 마음에 완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마음으로 지켜봐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는 이유입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생명 사실은 내 속에 있는 것이구나!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부처님 진리생명을 타고 났음을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감사한 마음이 다른 감사함을 불러옵니다.
내 환경이 평화로우려면 먼저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한다. 그것이 일체유심조의 도리다. 내 마음에 따라 내 환경을 만든다. 유유상종이다. 내 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그 사실에 대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한다. 그럴 때 나에게 끊임없이 감사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무한의 지혜, 나의 생명에 깃들어 나의 인생을 빛내주신다. 부처님은 무한의 자비 나의 생명에 깃들어 나의 인생을 원만하게 키우신다. 부처님은 무한의 위력, 나의 생명에 깃들어 일체를 성취시키신다. 나는 항상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 성공의 길을 간다. 감사하여라.
부처님의 위신력이 바로 내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에 깃들어서 일체를 성취시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와서 우리들에게 일러주고자 했던 법문입니다.
팔만사천법문의 근본은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런 생명이라는 사실을 눈뜨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행해서 깨닫기 전에는 모든 중생의 삶이 괴로움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출가를 했고 설산에서 6년이란 긴 세월을 난행과 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구나.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고가 아니고 열반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이고 틀림없이 나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것이 몸뚱아리는 아닌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생명입니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부처님의 모든 공덕을 다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보지 못해도 우리 모두가 부처님생명임을 믿고 확인하는 것이 마하반야바라밀염송이고,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반야법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무결한 모든 공덕을 다 가지고 있는 생명임을 눈을 뜨고, 이것을 내어 쓰는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불자들의 생활이고, 반야법문을 만난 우리들의 생활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월보참조>
삼독(三毒)을 끊어라
 
 삼독이란 탐.진.치인데 내 생명이 마하반야바라밀인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우리들의 생활을 아주 힘들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이 삼독이다.
 
 탐심이란 현재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에 대한 집착이다. 자기중심의 집착이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이웃으로 확대되고 이 집착심이 탐욕심으로 되어 지는데, 이 탐욕심이 있으면 내가 최고다 하는 생각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 담을 쌓는 것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것은 대립자가 없는 동일생명인데 탐욕심 속에서는 다른 사람과 나를 담을 쌓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와 나를 담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와 다른 생활을 하고, 이것이 자기 삶을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들은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어떤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태어났다. 내가 기쁘지는 것이 내가 태어나는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 기뻐지는 것은 나혼자 기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와 더불어 다른 사람과 더불어 기뻐지는 것이 기쁨이 배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가 진심인데 이 진심은 성내는 것인데, 이 성내는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 나라고하는 어떤 집착심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것입니다.
 이 화를 낸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 것이고 내 몸속에 독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옛속담에 일로일로(一怒一老) 일소일소(一笑一少) 이것은 생리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의 세포는 6년이 지나면 모두가 바뀌는데 몸속에 독소가 쌓이면 내 몸도 나빠지고 내 환경도 나빠지는 겁니다. 이것이 진심입니다.
 
 
 세 번째가 치심 어리석음인데 이 어리석음은 마음이 혼탁해서 지혜가 없어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입니다. 근본적인 어리석음은 나의 실상을 모르는데 있는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리석은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나는 업보중생이 아니고 내 생명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고,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알 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견 올바른 견해인데, 그 올바른 견해가 내 생명이 범부의 생명이 아니라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공덕생명이라는데 눈을 뜨는 것이 바로 치심을 없애는 근본입니다.
 
 내 육체가 본래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삼독심을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나오는 것은 자신과 세계의 참모습을 바르게 보는 것인데, 바로 이 부처님의 진실생명 그 기에는 대립자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동일생명이 가장 중요한데 이 삼라만상과 더불어 모두가 동일생명임을 내가 눈을 떠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견인데, 삼독을 제거하고 우리의 본래 생명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 생명이 부처님의 공덕생명임을 항상 지켜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을 읽고 일과정진을 하는 그 근본은 우리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잊지 않겠다는 겁니다. 예불을 하면서도 저 부처님도 내 생명이라 생각하면서 절을 하는 겁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보지 못해도 항상 믿고 관(觀)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그칠 지(止)인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본래 없다는 것, 모든 요소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에 실다운 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내가 믿고 항상 응시해야합니다. 이것이 관과 지인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본래 없다는 것, 육체란 본래 없다. 모든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항상 보고 탐욕심을 부려야할 대상이 없다는 것에 눈을 뜨는 것이 바로 그칠 지입니다. 이렇게 내 생명이 본래생명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삼독심을 다 없애기 위해서 나오는 수행법이 계정혜 삼학입니다. 계를 지키고 선정에 들고 지혜가 나옵니다.
 
 
 내 생명이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바로 정입니다. 그 수행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이고 참선입니다. 잡념이 쉬고 그 자리에 들기 위해서는 계를 지켜야합니다. 내 생명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행동화해야합니다. 그 행동화하는 것이 진리생명에 행동하는 것입니다. 계를 받는다는 것이 하지마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량없는 공덕생명을 현실화하는 것이 계입니다. 즉 진리의 행동화입니다. 그럴 때 나에게 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항상 기쁘고 바른생각 바른행이 나옵니다. 내가 깊은 정의 입장에 서 있을 때 그 속에서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이름해서 지혜의 빛이라 합니다.
 
 
 우리가 계정혜 삼학을 닦음에 의해서 탐진치 삼독을 제거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내 생명이 반야바라밀생명에 도달하게 되고 내 생명이 반야바라밀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내 생명 부처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래서 이웃과 부모님과 모든 사람들이 정말 고마운 사람들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반야바라밀을 염송을 해서 내 생명이 한량없는 공덕생명이고,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생명이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는 속에서 살면 내 삶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기쁨이 있는 그런 삶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늘 마하반야바라밀 염송 속에서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과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생명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형제여러분들의 삶이 좀 더 보람있고 즐겁고 기쁨의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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