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9년 11월 세째주 법회. 혜담스님 방하착이 반야바라밀이다. > 불광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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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9년 11월 세째주 법회. 혜담스님 방하착이 반야바라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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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주 작성일2015.11.11 조회34,7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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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만욱 성항경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멀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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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하착이 반야바라밀이다.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

  불교인지 불교가 아닌지를 알려면 사법인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의미가 들어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은 모든 것은 무상(항상하지 않고)하고, 변화한다. 즉 일체는 모두 끊임없이 변화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을 인생무상으로 잘못알고 불교를 비관적 염세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으나 변화를 보는 것은 진리를 보는 안목을 갖추는다는 것입니다.

   제법무아는 정신적 물질적인 어느 것에도 변하지 않고 고정된 '나'라는 것이 없으며 '나'라는 어디에도 집착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체개고는 진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고통속에 있으므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와 도(팔정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 번뇌인 탐심 진심 치심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일으키게 되므로 고통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수행입니다.

   제법무아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집착을 놓았을때 내가 없는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가 반야바라밀을 봤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반적정은 번뇌망상이 없는 적정의 자리가 열반이므로 불교는 궁극적으로 번뇌망상을 끊고 열반적정의 자리(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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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들은 방하착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모든 집착을 내려 놓는다는 말은 수행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방하착이라는 말은 흑치범지라는 외도수행자가 오동나무 두그루를 손에 들고 부처님께 겨루려고 왔는데 부처님이 내려놓아라고 해서 오른쪽 나무를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라고 해서 왼쪽 나무를 내려놓았는데 또 내려놓아라고 하니 내려놓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느냐고 질문한데서 생긴 말입니다. 부처님이 내려놓아라고 하는 말은 육근과 육경의 집착을 내려 놓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착으로 인해 본성인 불성을 알지 못하므로 집착한 자리를 내 마음이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범부중생의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별하는 마음이나 본래마음은 밝은 마음이며, 불성이며 반야바라밀이며 법성이므로 집착을 벗어난 본래마음을 알자는 것입니다.

   상생TV에 한단고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우리민족은 밝은 성품을 가지 태어난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한강은 밝고 크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강이며, 우리민족이 이런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부처님 말씀한 본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상을 넘어서는 마음은 분별하는 마음을 계속 파고 들어가면 바닥이 드러나면서 본래마음인 불성이 드러나며, 모든 집착과 번뇌에 벗어났을때 한없는 밝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없는 그 자리를 찾는 것은 방하착하라는 것입니다. 공을 보라는 것입니다. 공은 텅비어 있는 자리이나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탐심과 집착을 놓아지면서 이를 넘어선 실공 활공이 드러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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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품반야경에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살을 보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의미는 반야바라밀도 보살도 모두 이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도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도 이름뿐이고 실다운 체가 없어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본성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한량없는 공덕이 현출되고 현실화됩니다.

  인간이 사는 것은 기뻐하고 보람을 가지기 위해서며 이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모으는데 기쁨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는데 보람을 가집니다. 그러나 불자의 기쁨과 보람은 열반적정을 얻는 것이며 본성을 보는 것이며 본성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다운 나는 무엇인가? 자식에게는 엄마로 불려지기도 하고, 어릴때 친구에게는 어린 모습으로, 선생님에게는 제자로 절에서는 보살로 불려지는 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실체가 없는 것이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인연에 의해 잠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공은 온갖 것이 갈무리되어 있으나 이 공이 자기모습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내 몸뚱아리가 공이며 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공이 나타난 바가 내 모습이므로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이 모습으로 바라밀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본성대로 살면 내 삶이 기쁘고 행복해지나 집착 때문에 잘 안되는 것은 낭뜨러지에서 떨어진 장님이 바위에 걸려 바둥대는데 바로 밑이 땅인데도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까봐 내려오지를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방하착하라고 해도 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를 업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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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오래동안 가뭄에서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축복의 비가 내리는 듯 합니다.
    물이 생명수이며, 생명수를 받는 우리는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이렇게 내리는구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수능을 준비하는 입시생 엄마들의 기도소리도 몇칠 남지 않아서인지 원숙해진 듯 합니다.
    부디 모든 학부모님들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체험하시길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부처님의 무량공덕 구현하여
                         참다운 행복의 삶을 여는 정념수행
                                                 팔공총림 동화사 유나 지환 스님
   중생은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 등 6가지 욕계에 살고 있습니다. 욕계는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말입니다. 어둠과 고통이 많은 지옥에서 밝음과 행복으로 가득 찬 천상까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나를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의 문화, 사회, 정치, 경제적 현실은 어두움을 더 많이 가지기 쉬운 환경이기에 우리는 어두움과 욕망에서 밝음과 행복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천수경에
           무상심심 미묘법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
           백천만겁 난조우 백천만겁인들 어찌 만나리
           아금문견 득수지 내 이제보고 듣고 받아지니니
           원해여래 진실의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

    인간 몸 받기도 어려운데 불법을 만났으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기 위한 원을 세우고 정진하며, 보리심을 발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최상의 삶은 어둠의 요소가 사라지고 지혜와 자비 즉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발휘하면서 사는 삶이며,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최상의 삶을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3요소로 정견, 정념, 정행을 들 수 있습니다.
   
  정견 즉 바른 견해는 생명의 참모습을 보고, 모든 존재현상의 이치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존재실상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불생불멸이며 진공묘유를 설하였고, 무상 고 무아를 보도록 가르쳤습니다. 일체는 무상하게 변하므로 우리는 무상의 원리를 체험해야 합니다. 무상의 원리는 중도의 진리와 함께 합니다.
   실상의 진리를 내가 깨달아 알기에는 어려우니 부처님의 생명실상에 대한 가르침을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른 가르침을 들어도 자기 깜량대로 받아들이며, 좋은 소리를 너무 들어 매너리즘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환희심 감사의 마음으로 새겨들어 기존의 견해, 마음, 업들과 대치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참마음은 위대합니다. 우리의 참마음은 항상 밝고 원만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좋은 영상이 찍혀있어 스크린에 나타나는데 우리의 업보들이 현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육체적 한계에 부딪치면서 더욱 긍정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고 힘든 것은 업장 때문입니다. 업장이 있다는 것도 본래 청정심에서 보면 망념이고 구름과 같은 것이지만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고 그 굴레를 덮어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망념임을 분명히 알고 벗어나야 합니다

   정념은 바르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광덕스님은 마하반야바라밀을 항상 염하고 일과정진을 강조하셨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나의 마음이 참마음과 통하도록 하는 것이며 무량공덕을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청정하고 여여함을 믿고 수행할 때만이 무량공덕이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발심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시다. 중생은 애착을 하고 있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려면 노력하고 향상시켜야 합니다. 옷의 때는 옷이 아닙니다. 때를 옷인 줄 알고 때를 더 증가시켜서는 안됩니다.

     X=0 Y=∞
   X의 요소는 원망, 질투, 간탐심, 욕심, 화, 어리석음 등 부정적 생각이며, 긍정적 생각도 역시 X입니다. 최상의 삶에서는 긍정적 생각도 넘어서야 합니다.
   Y는 지혜와 자비 무량공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행은 X의 요소인 번뇌망상(부정적 생각과 긍정적 생각)을 지우는 것입니다. 즉 에고의 활동을 줄이고 아만심들을 비우는 것으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X의 속성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호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입력된 것이고, 때이므로 내 마음이 아닙니다.

 일어나는 생각이 내 마음이 아니고 오염된 것이다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이 망념들은 없앨려고 싸우면 더 치열해 지므로 그 생각은 알아차리되 그대로 두고 꾸준히 정기적으로 일과수행을 하는 것이 생각을 비우는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규준히 해야 합니다. 공부도 하다보면 탄력을 받아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수행의 원리에 맞게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때가 업장이 되어 잘 녹지 않습니다. 업장이 본래 공한 도리를 알아도 이것들이 나를 집어 삼키고 있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을 계속 지속적으로 하면 X가 없어지고 Y가 발휘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X가 일어나는 것을 탓하지 말고 알아차리도록 해야 합니다. 화는 조건이 맞을때 일어나지 언제나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두면 부정적 생각은 힘이 빠져 사라지게 됩니다. 화나는 현상이 일어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현상이 지나가면 그 바탕은 여여한 자유와 평화 지혜와 자비의 공간이 드러납니다. 이를 느끼고 체험하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살아가는 마음에서 보리심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진리의 세계로 방향을 바꾸어 진리와 하나 되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남편 자녀 친구도 무량공덕생명임을 확인하고 존경하고 인정하게 됩니니다. 무량공덕 생명이 빛날 수 있도록 끝임없이 증진해야 할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과 만남이 사랑입니다. 거기에는 내가 없습니다. 나를 비우면 사랑하게 되고 베풀게 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의 창조능력으로 삶의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Y=∞입니다. 내 생명 무한공덕 생명, 내생명이 잘 작동되도록 해야합니다. 무량공덕 생명임을 느끼고 체감하고,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이 생명에게 저절로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공명현상이 일어나며 환희가 나옵니다.
   정행은 내 생명이 무한공덕 생명임을 알고 하는 모든 행동이며 보현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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