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바라밀의 의미 - 불광사 불광법회 회주 지정스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배선희 작성일2019.09.24 조회3,410회 댓글0건본문
마하반야바라밀의 의미
불광사 불광법회 회주 지정스님
부처님이 49년 동안 설법하시면서 21년 동안에 걸쳐 반야경 6백권을 설법하셨다. 49년 중 거의 절반을 반야사상에 힘을 기울여 강조하신 것이다. 반야경 6백권의 핵심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로 집약된 것이라 생각하여 그 의미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마하는 인도의 고대어인 범어로 크다, 많다, 우세하다 등 다양한 표현들이 많지만 사실 이런 표현 이전에 숨어있는 뜻으로 보아 마하는 불성의 일면을 말한 것이다. 절대로 비교할 곳이 없는 무한능력자이며 큰 위신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일컫는 것이다. 마하는 큰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작은 것을 포함한 큰 것이기 때문에 항상 능소능대(能小能大)한 신축성이 있다.
마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또한 가장 나쁜 것도 포용할 줄 아는 바다와 같은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다. 아니 나쁜 것을 포용한다기보다 제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좋게 승화시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마하의 의미와 그 능력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응용해야 한다. 이를 응용하여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한낱 관념론에 지나지 않고 학문뿐이지 부처님이 바라는 진정한 보살이 될 수 없다.
반야 역시 인도의 고대어인 범어인데 사물의 참된 이치를 사무쳐보는 깊은 지혜이다. 이 지혜는 인간 누구나 진실한 생명 속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실한 생명 속에 들어있는 지혜를 생명과 함께 움직이는 데 반야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반야는 진리가 뒷받침된 실천하는 행동의 전개이며 생동감이 살아있는 지혜를 의미한다. 이것이 반야행이며, 보살행이며, 오늘 이 시대의 보살의 사명인 것이다.
불교는 명상이나 정신수양과 같은 삼매만이 보살행을 이루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살기 좋은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소위 행복의 세계는 명상이나 삼매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명상이나 삼매속에서 관념론에만 머물러 있는 종교는 행동이 결여된 하나의 '수도하는 종교'로 그치고 마는 것이며, 오직 고결한 수도인의 규율이나 생활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지혜의 생명을 구체적으로 전개하는 실천행(보살행)은 없는 것이다.
행동은 즉시 역사를 창조하는 것인데 행동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없는 종교는 그 사회를 발전으로 이끌 수 있는 창조와 능동적인 기능이 마비된 타락된 종교로서 무용지물이 된다.
만약 반야를 명상이나 삼매의 범주 안에서만 인식하는 지혜로써 그친다면 생명력이 없는 죽은 지혜이다. 그러므로 반야는 생동감이 넘치는 살아있는 실천행(보살행)의 지혜로써 가치를 발휘하여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불교가 타종교에 비해서 행이 없는 종교로 지탄받기 쉬운 요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보살행(실천행)은 이른바 도통한 도인(신출귀몰하는 신비의 능력자)의 경계에서만 나올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비하하고 열등의식을 내세워 진실한 생명 속에 들어있는 지혜(반야)를 깊이 묻어두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야의 참뜻을 바로 알아 보살행을 실천하여야 한다.
바라밀의 의미 또한 범어로 바라밀다를 줄여서 바라밀이라고도 한다. 이 바라밀이 가지고 있는 뜻도 한마디로 표현할 길이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하듯이 역시 바라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그 의미를 완벽하게 표출해 낼 만한 말이 없다. 억지로 설명한다면 '무(無)' 또는 '공(空)'이라고 말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어려운 말이므로 다시 적절한 표현을 찾는다면 본래부터 완성된 절대진리의 세계 혹은 극락세계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꽃피고 있는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꽃은 진작부터 우리 심장에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하라고 하는 위대한 포용력의 토양 속에서 반야라고 하는 지혜의 보살행인 씨앗이 성장할 때 바라밀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꽃은 피어나는 것이다. 마하와 반야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라밀의 싹은 성장한다. 노력은 감추어져 있었던 바라밀을 들추어 발견한 것뿐이다.
마하와 반야하고 하는 토양과 씨앗이 이미 우리 심장에 존재하여 있을 뿐만아니라 성장까지도 완료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자기 스스로 조금도 손색없는 부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마하와 반야를 힘껏 채찍질하여 '바라밀'의 꽃이 무성하게 필 수 있도록 토양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부처님께서 21년간이나 설법한 반야경 6백권과 모든 팔만대장경의 중심사상이 '마하반야바라밀'로 결론지을 수 있다고 볼 때 우리는 이상적인 행복의 세계, 즉 바라밀의 세계를 완성하려면 토양의 환경조건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부단한 노력으로 보살행을 하여야 한다.
환경조건을 잘 만드는 보살행은 매사에 감사와 희망 그리고 마음 속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미움과 원망, 대립의 갈등을 비워서 밝은 표정으로 '보현행자의 서원'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1999년 6월 불광지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