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닦고 자비를 실천하는

신행 공동체 불광

역사

01

불광회의 창립과월간불광의 발간
1974년 9월 1일, 고 광덕스님의 불광회 창립.
1974년 9월 1일, 광덕스님이 불광회를 창립하셨습니다. 불광회는 일종의 법인적 단체로서, 이후 스님과 불광 대중들이 전개한 모든 불광운동을 이끈 모체입니다. 그리고 1974년 11월 1일, 월간불광을 창간함으로서 불광은 이 세상에 몸을 나투었습니다.

광덕스님은 종로 3가 봉익동 대각사 한 쪽 골방에서, 전화 한 대도 없이, 오직 원력하나로 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78쪽 짜리 4*6판의 조그마한 월간불광은 출간 즉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2016년 5월, 42년의 시간동안 매월 불광독자들에게 전달된 월간불광은 지령 500호를 달성하였습니다.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이것은 하나의 작은 기적입니다.

02

불광법회 밀물처럼 모여드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불광 법문을 직접 듣고자 하였습니다.
광덕스님께서도 처음부터 법회 개설을 약속하셨었고, 1975년 10월 13일, 월간불광 창간 1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인 한국사상강연회를 계기로 법회 창립이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5년 10월 16일 대각사에서 불광법회가 창립법회를 열고 세상에 법신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불광운동을 주도할 불광 역군들이 첫 결사에 성공했습니다.
최초의 반야바라밀결사에는 43명의 보현행자들이 참가하였 습니다.
법회는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반 대각사 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소천스님의 금강경강의를 교재로 쓰면서 금강경 보급운동을 전개하였고, 1977년 1월부터는 보현행원품을 교재로 삼아 공부했습니다.
불광법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모임에 43명 모이던 것이 1년 뒤, 1976년 10월 16일 창립 1주년 기념법회에 480명의 불자들이 모였습니다.
한국불교사상 희유의 일이 었으며, 1970년대의 한국불교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매우 놀라운 기적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1977년 9월에는 법당이 가득 차서, 목요일 법회와 금요일 법회를 나누어서 열기도 하였습니다.

03

불광사 불광바라밀운동의 잠실법당
불광운동의 새로운 전기, 잠실 불광사 창건 1982년 10월 24일 잠실 불광사에 입주하면서 불광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1982년 이후 불광법회의 불광운동은 독자적인 도량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합니다.

1978년 6월, 법당봉납발원법회를 계기로 시작된 대중들의 구체적인 모금 활동은, 법회 때 천원내기를 전개하여 200구좌를 조성하고, 1인당 1평사기 운동을 벌여 약 800여명의 회원들이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잠실법당은 불광법회 1천여명의 대중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불자 2만여명이 대 화주가 되어 쌓아올린 대중들의 공든탑인 것입니다.
1982년 10월 잠실 불광사 건립을 계기로 불광운동은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숙원사업들을 과감하게 전개했습니다.
1987년 3월 1일, 불광유치원이 정식으로 문을 열어 수백명의 어린 연꽃들을 기른 것이 가장 중요한 성취이며, 월간불광 역시 이시기에 접어들면서 경영 자립을 이루고 편집체제를 쇄신해 갔습니다.
불광법회의 근간을 이루는 법등-법회 활동도 확산되어 갔으며, 불교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사업도 불광교육원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갔습니다.
1992년 4월 2일 국악성악곡 보현행원송을 발표, 1995년 5월 11과 12일 진행된 국악성악곡 부모은중송 발표, 1999년 11월 14일에는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불광창립 25주년 및 월간불광 300호 발행기념 대법회는 성장하는 불광 에너지를 총체적으로 표출시킨 한마당 어울림이라 할 것입니다.
1999년 최초 인터넷 불광 홈페이지 개설과 2007년 9월 지역지와 사보를 통합한 새로운 형식의 격월잡지 공감Plus의 발행은 불광의 언론기능을 한층 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8월 발족한 불광장학회의 첫 장학금 지급과, 불광자원봉사 센터의 석촌호수 생태길라잡이 활동등은 불교의 대 사회적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불광의 끊임없는 변화입니다.

04

제2불광운동 중창불사, 도심 전법도량의 새 이정표
1982년 건립된 불광사는 창건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가장 큰 법회장으로 전법의 요람이었으나, 30여년의 새월이 흘러, 건물은 낙후되고 공간이 협소해 더 이상 인원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광의 사부대중들은 불광법회가 도심포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던 것처럼, 21세기 초두에 새롭게 일신하여 불교와 사회, 그리고 대중들의 변화를 이끌어 가야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절감하였으며, 여기서 대두된 현안이 바로 불광사 중창불사였습니다.
2007년 11월 법회 임원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중창불사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신축법당 부지로 편입될 불광유치원을 이전하고, 불광교육원을 증축하여 불사기간동안 법회를 진행할 대체 법당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11년 2월 14일, 불광사의 사부대중들과 종단 안팎의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불광사 중창불사를 위한 착공식을 거행 하였고, 이렇게 시작한 중창불사는 2013년 10월 13일 준공법회가 열리기 까지 2년 8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는 불광사 창건 이후 31년, 중창불사 선포식 이후 8년 만에 이룩한 성취로 새롭게 중창된 불광사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아름다운 도심 사찰의 면모를 드러내며 빛을 발했고, 광덕스님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최적의 신행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중창불사 8년의 기간 동안 이룬 성과는 단지 법당 불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0년 7월 불광연구원을 설립하여 광덕 큰스님의 사상과 전법행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활발히 개최하였고, 학술지 전법학연구의 발간과 함께 전법학술상 공모 등의 사업을 펼쳐나갔습니다.
이는 불광사 창건 이후 31년, 중창불사 선포식 이후 8년 만에 이룩한 성취로 새롭게 중창된 불광사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아름다운 도심 사찰의 면모를 드러내며 빛을 발했고, 광덕스님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최적의 신행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중창불사 8년의 기간 동안 이룬 성과는 단지 법당 불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0년 7월 불광연구원을 설립하여 광덕 큰스님의 사상과 전법행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활발히 개최하였고, 학술지 전법학연구의 발간과 함께 전법학술상 공모 등의 사업을 펼쳐나갔습니다.
2014년에는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보현행원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학술세미나와 사진집 발간을 통해 불광의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